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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Feb 19. 2021

유모차 산책의 추억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져 호야와 유모차 산책을 나갔다. 유모차 산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그동안 날씨가 추워서 움츠려 있기도 했지만 호야가 유모차 거부를 한 번씩 심하게 보인 이후로 유모차 산책을 많이 주저하게 됐다. 이상하게 남편도 같이 셋이서 외출하는 날이면 유모차 거부는 유독 더 심했다. 얼마 전 예방접종을 하러 소아과에 갈 때는 유모차를 아예 타지 않으려고 해서 소아과에 다녀오는 동안 남편이 계속 호야를 안고 있었다. 난 옆에서 빈 유모차만 계속 끌고 다녔고.


오늘은 단둘이라 그런지 유모차를 태워도 얌전했다. 냉큼 집 앞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서 유모차에 장전해두고 길을 나섰다. 30분이면 돌아올 산책이지만 커피는 필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배시시 새어 나왔다.


작년에 호야랑 처음 유모차 산책을 나갔던 때가 기억났다. 꽃이 피기 시작했지만 아직 날이 쌀쌀한 3월 말이었고 생후 108일째 날이었다. 100일이 지나서 슬슬 외출을 시도해보려고 남편이랑 셋이 나갔었는데, 호야가 추울까 봐 따뜻하게 입힌다는 게 그만 너무 꽁꽁 싸매 놨는지 호야가 결국 덥다고 뿌에엥 울어버렸었다. 그래도 좀 덜 덥게 해 주니 별 탈 없이 잘 타서 1시간 20분 외출에 성공.


처음 유모차 타고 외출한 날. 꽁꽁 싸매 놨더니 더워서 탈출했다.

 


그다음 날부터 거의 매일 호야와 산책을 나갔다. 나가면 바로 커피를 샀고, 15분 정도 걸리는 공원에서 30분가량 산책을 한 다음, 돌아오는 길에 장을 보는 게 나름의 일과였다. 생후 6개월 이후에 아기가 빨대컵 쓰는 연습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유모차 타는 시간이 빨대컵 연습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얼마나 산책을 많이 나갔는지 여름이 되자 호야 다리는 금세 갈색으로 그을렸다.


빨대컵 연습하는 호야. 유모차 산책을 하는 동안 우리는 각자 바빴다.



유모차 거부는 생후 10개월 무렵부터 찾아왔다. 1초씩 혼자 서기 시작하고, 잡고 걷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공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뿌에엥 울었다. 유모차를 오래 태워보려고 장난감도 달아주고 맘마밀 퓌레도 쥐어줘 봤지만 산책 횟수와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공원까지 가는 건 꿈도 못 꿨고, 커피를 사서 장을 보거나 커피만 사 갖고 돌아오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그 짧은 시간에도 유모차에서 내리겠다고 낑낑거리는 바람에 종종걸음 친 날도 많다.


유모차에서 탈출.



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은 오늘. 호야는 근엄하게 앉아있는데 나 혼자 신나서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며 유모차를 밀었다.

"호야야 우리 이제 매일 나올까?"

언제 유모차를 싫어했냐는 듯 얌전한 호야를 보니 이제 매일 나올 수 있을 것도 같아 기대가 된다. 다행히 이사한 곳 앞에 있는 공원까지는 걸어서 5분이면 올 수 있어서 호야가 유모차에 있는 시간이 전보다 많이 줄기도 했다.


매일 유모차 산책을 나가는 게 당연할 때는 유모차가 조금 지겹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때가 그리워지니 사람 마음은 참 알 수가 없다. 아기의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듯해도 변화가 참 많다. 내가 모든 순간을 충분히 만끽해야 하는 이유다.


오랜만에 외출한 오늘. 유모차가 그새 작아졌다. 생후 14개월 호야.
신발 신고 걷는 연습 중.





2월 5일부터 30일 동안 매일 글을 발행합니다. (15/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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