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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입소 하루 전

나의 불안을 들키지 마라

by 햇살바람


하루 종일 비가 추적추적 오는 삼일절. 오늘만 지나면 호야가 어린이집 입소를 한다. 몇 달 전부터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드디어 하루 앞까지 왔다. 시간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아닌 게 아니라 생후 10개월 무렵부터는 시간이 참 쏜살같다. 호야 삶의 1막 1장이 끝나고 1막 2장이라는 새로운 막이 열리기 직전,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예상할 수 없다.


14개월 된 호야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도 많았다. 시부모님이 "벌써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하고 말씀하실 때마다 호야에게 괜한 미안함이 생기고는 했다. 어쨌든 우리 부부는 일단 호야를 어린이집에 보내보기로 했다. 휴직 수당을 받을 수 있는 기간도 이제 곧 끝나서 되도록이면 맞벌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 호야의 협력이 필요해졌다. "호야는 우리의 걱정보다 훨씬 적응을 잘할지도 모른다"는 남편의 말도 힘이 됐다. 만약 적응 못하면 그때 다시 고민하지 뭐. 다행히 호야는 소아과에서 예방주사를 맞을 때 빼고는 낯선 사람을 보고 우는 일이 없었다. 공원에 갈 때는 오히려 운동 나오신 어르신들께 자꾸 다가가 부담스럽게 빤히 쳐다보고는 했다.


어린이집 준비물은 이미 예전에 챙겨놨다. 칫솔, 치약, 기저귀, 로션 같은 것들이다. 입학원서나 응급처치 동의서 같은 입소 관련 서류도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날 거의 작성해뒀다. 낮잠이불도 얼마 전에 주문해서 아기가 친숙하게 느끼도록 거실에 계속 깔아 두고 있다.


제일 걱정했던 아기의 낮잠과 어린이집까지의 이동도 어느 정도 진전을 보였다. 낮잠시간은 원래 10시 반에 낮잠을 자던 아기를 어린이집 낮잠 시간인 오후 1시에 맞추는 노력을 2주 정도 하니 12시 정도까지 늦춰졌다.


어제는 차로 12분 걸리는 어린이집까지 다녀오는 연습을 했다. 갈 때는 남편이 아기와 같이 뒷좌석에 앉고, 돌아올 때는 남편도 나도 둘 다 앞좌석에 앉아서 아기와 조금씩 거리를 둬보기로 했다. 아기 달래기용 간식과 주스로 무장하고 셋이서 차에 탔다.


차를 타면서 간식과 주스보다 더 중요하게 챙긴 건 호야가 울더라도 허둥지둥하지 않겠다는, '평온한 척'을 위한 마음의 준비였다. 호야가 태어난 이후 항상 신경 쓴 것이 바로 이 '안정된 (척하는) 마음'이었다. "외동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부모의 마음이 안정되어 있고 행복해야 한다(외동아이 키울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27p)"는 말을 실천하기로 다짐했었기 때문이다. 호야가 분유를 달라고 빼액 소리치는 순간이나, 밤중에 갑자기 비명을 지르듯이 우는 날에도, 마음은 혼비백산했지만 겉으로는 늘 카카오 캐릭터 라이언의 표정처럼 평온한 척을 했다. 물론 행동은 재빠르게. 겉모습은 평온하지만 물속에서는 열심히 헤엄을 치는 백조와 비슷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 나의 불안을 들키지 않는 것. 그건 아이에게 '마음의 안전 기지'가 되어주기 위한 연습이기도 했다.


아기가 카시트에서 낑낑거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불안한 낯빛을 숨기고 침착하게 말을 걸고 간식을 줬다. 그 덕분인지 오만가지 걱정과 달리 아기는 차에서 무척 얌전했다. 어린이집 앞 공터에서 20분간 빨빨거리다가 돌아오면서도, 뒷좌석에 혼자 앉는 건 처음인데도 조용히 과자를 먹었다. 과자를 다 먹으면 "까까"하면서 손을 뻗었고, 과자를 하나 쥐어주면 와그작와그작 과자 씹는 ASMR만 차 안에 울렸다.


아기가 이런 작은 과제들을 하나씩 해나가며 성장할 때마다 전해지는 감동이 있다. 진실은 다를지 몰라도 나의 '평온한 척'이 조금은 통했다고 믿고 싶다. 내일 어린이집에서도 무엇보다 나의 불안을 들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이유다.



어제와 오늘. 어린이집 입소 준비 중.






2월 5일부터 30일 동안 매일 글을 발행합니다. (25/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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