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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4개월 호야의 어린이집 적응기

by 햇살바람


3월 2일은 어린이집 입소 날이었다. 호야는 2019년생 아기들이 있는 만 1세 반이다. 만 1세 반이라고 해도 호야는 12월생이고 다른 아기들은 2, 4, 5, 7월생으로, 이미 두 돌이 지난 2월생 아기는 딱 봐도 호야랑 몸집부터 달랐다.


개월 수가 적은 것부터 시작해서 밥은 잘 먹을지, 잠은 잘 잘지, 온갖 걱정이 들었지만, 그래도 걱정 저 밑에는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시부모님께 아기를 맡길 때도 밤잠을 잘 때 외에는 워낙 잘 지냈고, 낯선 공간이나 낯선 사람 앞에서도 곧잘 적응을 했기 때문에(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늘 엄마 아빠와 함께였다)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걱정이 되긴 해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린이집마다 아기를 적응시키는 방식과 기간은 다르겠지만, 호야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적응기간은 2주였다. 어린이집에 간 지 이제 1주일이 조금 넘었으니, 적응기간에 절반 이상 지나온 셈이다. 그동안 아기가 잘 적응할지에 대한 걱정으로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처음 3일은, 엄마와 아기가 함께 1시간 동안 어린이집을 탐색하는 기간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같은 반 5명 중 3명의 아기(와 보호자)는 아침에, 2명은 이른 점심때 갔는데 우리는 이른 점심때 갔다. 그때는 딱히 걱정이랄 게 없었다. 엄마인 내가 옆에 있으니 호야도 약간 낯설어하긴 해도 평상시랑 비슷했다. 교실에 있는 장난감을 같이 탐색하기도 하고, 유희실에 있는 미끄럼틀을 타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서 아기랑 단 둘이 차에 타는 모험을 이때 처음 해봤다는 것. 아기가 쉬지 않고 까까를 달라고 하긴 했지만 다행히 걱정이 무색할 만큼 까까만 주면 모든 게 평화로웠다. 아기는 이때부터 "까까"를 잘 말할 수 있게 됐고, 나는 한 손으로 운전을 하면서 한 손으로 뒤에 앉은 아기에게 까까를 건네는 기술을 습득했다.


처음 3일은 아기랑 놀다 왔다.



어린이집 일정대로면 넷째 날은 아기가 1시간은 엄마와 같이, 30분은 엄마와 떨어져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었다. 처음으로 엄마와의 분리를 시도하는 날인데, 공교롭게도 코로나19 때문에 보호자가 어린이집에 출입할 수 없게 되면서 분리 첫날부터 바로 현관에서 분리를 하게 됐다.


그렇게 분리 첫날, 호야는 현관에서 엄마와 떨어져 선생님에게 안겨서 교실로 들어갔다. 그때는 아기가 울지 않아서 오히려 선생님이 놀랐다. 어린이집은 이미 엄마와 분리된 아기들의 울음소리로 난리가 났다. 호야는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얼굴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전날까지 아기와 같이 들어가서 놀던 공간을 아기 혼자 들여보내려니 마음이 헛헛했지만 30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니 호야가 잘 놀다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별 걱정 없이 같은 반 아기 엄마들과 근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30분 뒤에 만난 호야는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나는 내심 너무 놀라 아기를 번쩍 안고, 한 손에는 아기 신발을 들고 후닥닥 밖으로 나와 아기를 달랬다. 다행히 내게 안기자 호야는 곧 울음을 그쳤지만, 어린이집 현관 앞에 조그맣게 앉아 서럽게 울고 있던 모습은 내 가슴에 훅 박혀버렸다.


어린이집 4~5일째(엄마와 처음 분리한 이틀).



그다음 날은 주말이었다. 날씨가 흐리긴 했지만 추위가 물러간 터라 우리 가족은 이틀 동안 밖에 나가 신나게 놀면서 호야에게 애정 표현을 듬뿍 해줬다. 종종 어린이집 사진과 같은 반 친구들 사진을 보여주며 월요일에는 어린이집에 또 갈 거라고 짐짓 밝게 이야기도 해줬다.


월요일은 지난 금요일처럼 30분 동안 분리를 했다. 이번에도 호야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들어가서 나올 때는 선생님에게 안겨서 울면서 나왔다. 지난번처럼 대성통곡까진 아니었지만 울고 있는 호야를 보니 또다시 평정심은 날아가고 내 눈썹도 호야처럼 팔자 눈썹이 됐다. 키즈노트에는 호야가 오늘은 잠깐 웃기도 했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모든 아기들이 울고 있던 분리 첫날과 달리 호야만 울고 있는 둘째 날 사진들을 보니 오만가지 걱정이 몰려왔다.


지금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너무 일렀던 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이라도 줄여야 되는 건 아닌가, 그날 저녁 남편에게 고민 상담을 했지만 남편은 "호야는 잘 적응하는 중"이라며 내 고민을 들어주지 않았다. 내 고민에 시큰둥한 남편에게 "너는 아기가 울고 있는 걸 직접 못 봐서 그래" 한마디 하고 방에 콕 박혔다.


어린이집에 적응한다는 게 이런 거였나. 우는 아기를 지켜만 봐야 하는 일이었나. 이렇게 마음이 아픈 일일 줄은 미처 생각 못했다. 울고 있는 아기를 당장 안아주고 싶은데 믿어주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 호야와 둘이서 보내던 오붓한(?) 시간이 사라지게 된다. 아침 9시에 보내서 오후 4시에 데려오면, 저녁 먹이고 씻기고 나면 하루가 다 지나버릴 터였다. 그걸 이제야 실감하다니. 단유를 할 때 예상치 못하게 느끼던 울적한 기분을 이번에도 느끼고 있었다. 호야가 막 태어났을 때는 24시간을 붙어있었는데 단유를 하면서, 그리고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점점 거리가 생겨나고 있었다. 아기와의 분리는 엄마에게도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어린이집 적응'이라고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속 시원한 답변은 없었다. 그때 어느 어린이집 선생님이 쓴 글 중 일부가 눈길을 끌었다.



예민한 아이, 까다로운 기질 등 개인 성격의 이유로 적응이 늦어질 수도 있지만 일주일 안에 대부분 안 웁니다. 중요한 건 엄마 표정이에요. 불안해하지 말고 "잘하고 왔다"라고 격려해주세요. 선생님과 친구들과 즐겁게 일과를 보내고 나면 엄마를 만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게 적응입니다.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그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서 그 후로도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계속 봤다. 아기가 우는 건 길어도 일주일일 거라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불안해하지 않고 격려해주는 거라고 되뇌었다.


어린이집에 간 6일째 날(엄마와 분리 3일째 날)은 분리 시간이 조금 늘어나 1시간을 분리하는 날이었는데 이번에는 호야가 들어갈 때부터 눈치를 채더니 울음을 빵 터뜨렸다. 울면서 사라지는 아기에게 겉으로는 태연하게 "잘 놀다 와~" 인사를 했지만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신경은 온통 어린이집에 쏠려 있었다. 지금도 울고 있을까. 더디게 흐르는 시간을 계속 확인했다. 1시간 뒤에 아기가 나오길 기다리며 어린이집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니 곧 호야가 나왔다. 눈두덩이에 빨갛게 운 흔적이 남아있긴 했지만 걱정과 달리 이번에는 울고 있지 않았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호야가 15분 정도 울다가 간식을 먹은 다음부터는 잘 놀고 웃기도 했다고 했다.


7일째 날(엄마와 분리 4일째 날)이었던 오늘은 들어갈 땐 울음을 터뜨리긴 했지만 나중에 키즈노트와 사진을 확인해보니 1시간 반을 분리하는 동안 이전보다 더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끝나고 나올 때도 많이 발전한 모습이었다. '이제 집에 가는 건가'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어린이집 가방을 멘 채 다른 아기들 틈에서 얌전하게 서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보는 호야는 왜 이렇게 유독 작아 보이는지. 고 작은 게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겠다고 서 있는 것을 보니 애틋하면서도 기특했다.


어린이집 6~7일째(엄마와 분리 3~4일째).



어린이집 적응기간은 이제 3일 남았다. 점심 먹고 하원 하기(3시간 분리), 점심 먹고 놀다가 하원 하기(3시간 반 분리), 낮잠 자고 오기(6시간 반 분리) 미션까지 마치면 다음날부터는 정상적인 일과가 시작된다. 간식을 잘 먹는 걸로 봐서 점심밥을 잘 먹을까 하는 걱정은 덜게 됐지만, 아직 낮잠이라는 큰 산이 남았다. 정상적인 일과가 시작된 후에도 당분간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본 뒤 한시름 놨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엄마인 나보다, 아기가 엄마에게 더 많이 웃어준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 웃음을 볼 때마다 찡하다. 바뀐 일상을, 이제는 엄마인 내가 적응해야 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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