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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보내서 좋은 점

생후 16개월 때의 기록

by 햇살바람


호야가 어린이집을 다닌 지 2달이 됐다. 현재로서는 어린이집에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만 호야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많기 때문이다.


첫째로 호야가 전보다 짜증이 줄었다. 지금은 짜증을 내더라도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할 때(가위 같은 위험한 물건을 만지고 싶은데 만지지 못하게 할 때 등)가 대부분이지만, 전에는 집에서 잘 놀다가도 갑자기 알 수 없는 짜증을 오랫동안 부리곤 했다. 그때는 짜증의 이유가 원더윅스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어린이집을 다닌 후에 짜증이 줄어든 걸 보면, 집에서 충분한 놀이가 이뤄지지 않았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 보면 아기와 잘 놀아주지 못한 시간이 많았다. 노래를 불러주다가도 곧 목이 아파서 그만두고, 책을 읽어주다가도 곧 지겨워져서 그만두고, 까꿍놀이를 하면서 아기와 꺄르르 웃다가도 곧 지쳐서 그만두기 일쑤였다. 아기와 24시간 붙어있는 상황이다 보니 아기를 옆에 두고 핸드폰을 보며 육아 현실을 도피한 적도 많다. 그때는 호야가 혼자 잘 놀고 있는 것 같아 내버려 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심심한 걸 참고 있다가 짜증이 폭발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아기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어린이집에 다닌 후로는 실컷 놀다 와서 그런지 집에서도 대체로 기분이 좋다. 나도 아기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 쉰 덕분에, 아기와 있을 때 전보다 더 잘 놀아주게 됐다.


둘째로 말이 많이 늘었다. 어린이집을 가기 전에는 엄마, 아빠, 맘마, 무(물), 까까, 배, 딸기 정도를 말했다면, 지금은 안녕, 빠빠(빠이빠이), 싸뚜(싹뚝), 짠, 뻐뻐(뽀뽀)를 상황에 따라 말하고 쩨짤(3살)이나 때찌때찌 같은 말들을 따라 한다. 또 옹알이를 문장처럼 말하면서 혼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뭔가를 물어보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한글로 받아 적기 힘든 옹알이지만 굳이 비슷하게 쓰자면 "따아따아~ 또똥.. 땡긍응드~ 꾸꾸.. 따끙! ..꺄끄~ 땨" 이런 말들인데 중국어 4성 같은 억양이 있어 무척 귀엽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말하는 걸 많이 들어서 흉내 내는 것 같다. 친구라고는 해도 많게는 10개월, 적게는 5개월이 빠른 아기들이라 호야보다 다들 말을 잘하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처음에는 개월 수가 가장 적은 게 걱정거리였지만 이 점에서는 오히려 도움이 됐다).


셋째로 다양한 놀이를 경험할 수 있다. 호야가 어려서 아직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놀이들을 어린이집을 통해 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크레파스로 끼적이는 놀이 같은 경우, 호야가 아직 물건을 입으로 가져가는 시기라 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키즈노트에 "오늘은 크레파스를 한 번도 입에 넣지 않고 끼적이기를 스스로 시도했어요. 끼적이기는 영아들의 소근육과 두뇌발달에도 도움이 되므로 가정에서 경험해볼 수 있도록 도움 주시고 사용한 후엔 정리 습관도 들일 수 있도록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써주신 내용을 보고 그날 바로 크레파스를 사서 같이 놀았다. 기대와 달리 아직은 끼적이기보다는 뚜껑을 뽑거나 입에 넣기를 즐기지만 유익한 시도인 것 같아 종종 크레파스를 꺼낸다.


마지막으로 어린이집 선생님이라는 양육 파트너가 생겼다. 물론 호야 엄마로서 호야에 대한 책임과 판단은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어떻게 호야를 판단하든 그 말을 곧이곧대로 수용하지 않는 편이다. 호야를 제일 잘 아는 건 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어린이집 선생님은 나보다 일찍 아이를 둘이나 키우고 있는 육아 선배이자 전문가이고, 나와 남편 다음으로 호야와 보내는 시간이 많은 분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건네는 말에 도움을 받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학부모 상담을 갔을 때도 자신의 신발을 스스로 정리해보는 습관을 가져보게 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아기가 스스로 할 수 있게 기다려주는 엄마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걸 다 해주고 있었던 건 아닌가 뒤돌아봤다. 그리고 호야가 책을 읽어주는 걸 좋아한다는 말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내가 책을 읽어줄 때는 크게 관심을 보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들어보니 선생님은 노래를 부르듯이 책을 읽어줬다고 한다. '읽는 사람이 재밌어야 아기도 재밌어하는구나' 그때 알았다. 나는 책을 펼쳐놓고 "곰이네~ 물고기네~" 염불 외듯 하고 있으니 읽는 나도, 듣는 아기도 재미가 없었던 거다. 그 후로는 책을 읽어줄 때 (신나지 않아도) 신나게 읽어주니 아기가 더 좋아했다.


어린이집을 보내서 안 좋은 점은 없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없다. 종종 같은 교실에 콧물을 흘리는 아기가 있으면 감기가 옮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긴 하지만 호야도 콧물을 흘리며 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좋고 나쁘고를 말할 수가 없다. 호야가 등원할 땐 나를 보지도 않고 들어가고, 하원 할 땐 웃으면서 나오니 어린이집을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좋아하는 이유는 직접 들을 수 없으니 잘 모르겠다. 내 경우에는 선생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좋다. 아마 자신의 원칙을 지키려고 애쓰는 분이고(예를 들어 아기에게 "안 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기의 안전을 항상 잘 지켜주는 분이고(호야가 다치는 것은 주로 나랑 있을 때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직 다친 적이 없다),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판단보다는 주로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해주는 분이라 신뢰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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