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에게 처음 화를 내던 날
생후 1개월 때의 기록
아기가 태어난 지 32일 되던 날, 처음으로 아기에게 화를 냈다. 변명을 하자면 산후도우미도, 남편도 없이 아기를 본 첫날이었다.
아마 원더윅스였던 것 같다. 원더윅스란 아기가 정신적 도약을 하는 시기로 생후 20개월 동안 10번의 원더윅스가 있다. 그때가 되면 아기는 혼란스럽기 때문에 더 많이 울거나, 잘 먹지 않거나, 잠을 잘 못 자는 등 평상시랑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처음엔 정말 그런 게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신기하게도 아기가 힘들게 하는 시기마다 원더윅스 기간과 맞아떨어졌다. 그날은 첫 번째 원더윅스 기간이었다.
전날 밤 11시 반에 마지막 수유를 한 이후 1~ 2시간 간격으로 수유가 이어졌다. 이미 아침부터 졸려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밤에 못 잤으니 낮에 좀 잘까 했는데 그 후에도 호야는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거의 잠들지 않았다. 잠들어도 10분이 채 안 돼 깨곤 했다. 먹는 것도 조금씩 자주 먹었다. 배고픈 것 같아서 수유를 하면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분유는 그나마 먹다 남기더라도 얼마나 먹었는지 알 수 있었지만, 모유는 얼마나 먹는지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루틴이 무너져 아기가 울면 배가 고픈 건지, 소화가 덜 된 건지, 졸린 건지,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건지 매번 확인해야 했고, 수유하기, 트림시키기, 기저귀 갈기, 재우기의 반복 속에서 아기를 종일 안고 있어야 했다. 체력이 축나다 보니 감정도 부정적으로 되어갔다.
내가 아기에게 화를 낸 건 아기가 잠들기 직전인 오후 4시 좀 전이었다. 아기가 또 울었다.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달래도 달래지지 않는 아기를 누이고 나도 그 옆에 뻗어버렸다. 아기 울음소리가 꿈의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웅웅거렸다.
확인해보니 기저귀가 젖어 있었다. 방금 갈았는데... 나는 아기를 들어 올려서 아기침대에 눕혀 기저귀를 가는 그 일을 또 해야 된다는 사실에 진절머리가 났다. 아기는 빨리 움직이라고 악을 썼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는데 채찍질당하는 나귀의 심정이었다. 채찍질하는 게 누군가 봤더니 새끼 나귀다. 나귀는 새끼를 사랑하지만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었다. 채찍은 아팠다. '나귀 살려!' 생존 앞에서 모성애가 흔들리는 엄마 나귀.
툭.
그때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 아기를 내동댕이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믿기 어렵지만 정말로 그랬다), 다행히 그 감정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진 건 아니고 다소 느슨해졌다고 해야 맞겠다.
"어휴."
확 짜증을 낸 나는 벌떡 일어나 기저귀를 거칠게 갈기 시작했다. 아기를 탁 들어서 탁 눕히고 기저귀를 탁탁 벗겨서 물티슈로 닦은 다음(그 와중에 할 건 다 했다) 새 기저귀를 채우고 바지를 탁탁 입혔다. 아기가 놀랄 정도는 아니었지만 부드러움을 느낄 수 없는 기계적이고 신경질적인 동작들이었다.
"이제 됐니?"
아기에게 한마디 쏘아붙이는 순간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조금 지나서 아기는 잠이 들었고 나는 아기에게 화를 냈다는 사실에 여전히 충격을 받고 있었다.
'내가 엄마로서 자격이 있는 걸까?'
이제 막 태어난 아기한테 화를 내다니 난 엄마 자격도 없다며 자책했다.
'나 같은 사람이 아기를 키우겠다니, 그만두는 게 낫겠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엄마'는 직장을 그만두듯이 그만둘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걸. 엄마 자격이 없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자격이 있든 없든 아기를 키울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걸 그날 분명하게 깨달았다. 내가 부족하다면 나를 고쳐야 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아기야 미안해.'
그날은 저녁 내내 아기에게 미안했다. 한껏 풀이 죽은 스스로에게 '보통의 엄마'가 '좋은 엄마'라는 말을 상기시켰다.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듯이 '엄마'도 완벽하지 않다고. 그저 아기가 성장하는 만큼 엄마도 성장할 뿐이라고. 엄마도 모든 게 처음이니까... 그날 이후로는 아기에게 화를 내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덕분에(?) 몇 번의 위기를 넘겼다.
한번은 유모차를 끌고 동네 산책을 하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아기를 보고 말을 걸어오셨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식을 다 키우고 나니까 더 잘해줄걸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는 그분의 말에 갑자기 궁금해져서 "어떤 부분에 있어서 잘해줄걸 하는 생각이 드세요?" 하고 물었더니 "화를 좀 덜 낼 걸 하는 후회가 있어요. 그때는 나도 힘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랬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고 답했다. 의외였다. 뭔가를 못해줘서 후회가 남는다고 할 줄 알았는데 화를 냈던 일이 마음에 걸리다니. 나는 아주머니의 후회를 기억해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