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생후 3개월 때의 기록

by 햇살바람


첫돌이 지난 이후 촘촘하던 마음에 확연한 여유가 생겼다. 호야가 많이 성장한 덕분이다. 커진 몸집만큼 뼈도 굵어지고, 이유식과 분유도 졸업했다(분유를 끊으면 아기 입에서 아기 냄새 대신 입냄새가 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터미타임 한다고 엎어놓고 목 가누기 연습시킬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걸음마 보조기를 번쩍 들고 다니다가 바닥에 쿵쿵 내려놓는 바람에 층간소음을 걱정할 때가 되었다. 개월 수마다 아기의 발달상태를 초조하게 확인하던 일도 이제는 하지 않는다. 확인은커녕 13개월이 된 것도 한참 후에 알았다.


밀착 케어를 해야 하던 생명체에서, 가족 구성원의 일부가 된 느낌. 아직 말은 거의 못 해도 조금씩 의사소통이 된다. 내가 밥을 차리면 아기의자 옆에 붙어서 앉혀달라고 하고, 뽀뽀해달라고 하면 입을 벌리고 얼굴을 들이민다.


아기를 낳자마자와 지금을 비교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그때는 터널이나 섬에 갇힌 것처럼 끝 모를 어려움이 참 많았다. 가장 황당했던 순간 중 하나는 아기에 관한 모든 걸 나한테 물어볼 때였다.


아기가 계속 울거나, 딸꾹질을 하거나, 잠을 자지 않거나 하는 등 이유를 짐작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마다 모든 가족들이(그때는 본가에서 살고 있었다) 그 이유를 나한테 물었다. 예를 들면 아기가 혀를 조금만 내밀어 "혀를 왜 내밀지?" 하는 식이었다.


어쩌면 궁금하니까 무의식 중에 혼잣말이 튀어나온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때 나는 그런 혼잣말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아기의 행동들마다 쫓기듯이 초록창을 검색했다. 가족들은 내가 엄마니까 많은 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나 역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니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오는 질문들이 버거웠다. 아기의 출생과 동시에 일순간 부여받은 '엄마'라는 역할이, 모든 걸 알아야 한다고 나를 압박하는 것 같았다.


그런 자잘한 질문 공세에 시달리던 어느 날, 그 일로 남편에게 폭발한 적이 한 번 있다. 아기가 100일이 되기 전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퇴근 후 부엌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나는 방에서 우는 아기를 달래고 있었다. 아기에게 딱히 루틴이라는 게 없을 때라 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혹시 배고픈 건가? 모유수유를 시도해보지만 아기가 먹지 않는다. 졸린가?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다. 심심한가? 안고 돌아다녀보지만 소용이 없다. 춥거나 더운가? 음... 온도랑 습도는 적당하니까 이건 아닌 것 같고. 기저귀가 젖었나? 이것도 아니네... 도대체 왜 우는 거지. 어디가 아픈가? 혼자서 스무고개를 넘느라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있는데 부엌에 있던 남편이 들어오더니 한마디 했다.


"아기가 왜 자꾸 울어?"

순간 정전된 듯 의식의 스위치가 한 번 꺼졌다가 켜졌고 나는 남편에게 소리를 꽥 지르고 있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남편은 놀라서 그대로 굳은 채 나를 5초간 쳐다봤다. 나는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출산 직후에는 아기를 신경 쓰느라 무척 예민하기도 했다. 아기의 옷에서 혹시라도 단추가 떨어지진 않을까, 그 단추를 아기가 삼켜버리진 않을까, 그런 걱정들을 하느라 극강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개가 사나운 집 문 앞에 "개조심"이라고 써붙여 놓듯이 내 방문에 "엄마 조심"이라고 써놔야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남편은 그 개 같은(!) 엄마에게 물린 희생양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는 남편과 나의 유행어가 되었다. 상대방이 나에게 답을 모르는 질문을 하면 장난기가 발동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라며 되묻곤 한다. 그런데 그런 되물음을 하는 사이 신기하게도 내 마음이 전보다 한결 편해졌다. '엄마'라고 별 수 있나. 나라고 다 알 순 없다. 그게 당연한 건데 그땐 그걸 몰랐다.



네가 왜 우는지 너무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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