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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Jun 01. 2021

결혼 1년 9개월 만에 따로 자게 될 줄이야


지난 4월에 감기를 세게 앓았다. 3월 마지막 날에 수락산을 다녀와서인지, 4월 첫째 날에 부부싸움을 대차게 해서인지, 아니면 두 가지 일이 다 원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하룻밤 열이 나더니 콧물과 기침이 3주 동안 이어졌다. 이전에는 아파도 링거를 맞으면 금방 나았는데 이젠 나이 탓인지 링거도 효과가 없었다. 특히 기침은 한번 나기 시작하면 좀체 그치지 않았다.


사건이 있던 그날도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있는데 계속 기침이 났다. 우리 부부는 침대 옆에 아기 침대를 붙여서 같이 자기 때문에 호야가 깰까 봐 이불로 입을 막고 한참을 콜록댔다. 


"야."

"콜록콜록. 응?"


남편이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역시 날 걱정해주는 건 남편밖에 없군 생각했지만 그건 김칫국을 사발째 들이켜는 생각이었다.


"계속 기침할 거면 나가서 자."


...?... 뭐라고????


"와... 콜록콜록. 넌 내가 걱정도 안 되냐?!"


울컥했지호야가 옆에서 자고 있어 큰 소리는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분노를 담아 속삭였다.


"첨엔 걱정했었는데 기침을 계속하니까 그렇지."


더 얘기해봐야 내 기분만 더 나쁠 것 같았다. 더럽고 치사해서 방 밖으로 나왔다(라고 쓰고 쫓겨났다고 읽는다).


씩씩거리며 거실로 나오니 아기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부터 쏙 들어가 누우니 텐트가 작아 다리가 밖으로 삐져나왔다. 다리는 허전했지만 아기매트가 깔려 있어 그런대로 누워있을 만했고 여분의 이불까지 덮으니 의외로 아늑했다. 첫날은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는데 둘째 날부터는 쫓겨난 신세를 잊을 만큼 잠자리가 편했다.


거실에서 따로 자니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눈치 안 보고 기침을 맘껏 할 수 있다는  외에도 남편과 같은 침대를 쓸 때보다 넓게 잘 수 있는 데다가, 아기가 밤중에 깰 때도 남편이 아기 옆에 있으니 계속 숙면을 취하는 호사도 몇 번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밤 9시만 돼도 졸려하는 잠돌이 남편과 적어도 11시까지는 내 시간을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이전에 자는 시간을 번갈아가며 양보를 했다면(한 번은 일찍 자고 한 번은 늦게 자는 식으로), 자는 공간이 분리되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따로 잠을 게 됐다.   


"야 언제까지 밖에서 잘 거야? 감기 다 낫지 않았어?"

"어? 아닌데? 콜록콜록."


아늑한 잠자리와 밤에 누리는 내 시간이 좋아서 감기가 다 나아서도 가짜 기침을 하며 버텼다. 거실에서 자는 걸 좋아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서운해하는 것 같아서 통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이 서운해한다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나 보다. 왜 방에서 안 자냐고 며칠 동안 묻던 남편이 어느 날은 아기 텐트에 들어가 눕더니 나오지 않았다. 


"뭐야? 왜 여기 누워있어?"

"내가 거실에서 자야겠어."

"뭐? 무슨 소리야. 안 돼, 내 자리야~"

"더워서 안에서 못 자겠어."


날씨가 더워지면서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이 불면을 호소하며 거실에서 자겠다고 텐트에 드러누워 버렸다. 아무리 밀어도 나보다 20kg 더 무거운 남편은 바위처럼 꼼짝도 안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때부터 남편이 거실에서 자고 내가 아기 옆에서 잔다. 


결혼한 지 1년 9개월 만에 따로 자게 될 줄이야. 부부는 같이 자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30년 넘게 혼자서 자 왔던 익숙함이 갑자기 사라질 리는 없다. 같이 자든 따로 자든 그게 뭐 대순가. 지금은 따로 자도 언젠가 또 같이 자기도 하겠지(아님 말고). 이런 작은 변화들이 아직은 재밌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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