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바람 Jun 05. 2021

늦게 귀가할 땐 맛있는 거


어제저녁 호야를 재우다 같이 잠들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한 게 저녁 9시였으니 9시 10~20분쯤이었을 것 같다.


'삑삑삑.'


번호키 누르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들어오는 기척이 들렸다. 야근했던 남편이 들어오나 보다 하곤 곧 다시 잠이 들었다.


"○○, 일어나 봐."


남편이 나를 살살 흔들어 깨웠다. 단잠을 몇 번씩 자다 깨는 바람에 인상을 찌푸리고 "왜?" 하고 물으니 남편이 "막창 사 왔어. 먹고 자."라고 했다.


"막창? 이 시간에? 나 다이어트 중인데?"


깊은 잠에 빠진 호야를 두고 슬금슬금 밖으로 나오니 밤 10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정말로 막창이 프라이팬에 소담히 담겨 있다.


"이 시간에 막창을 사 오면 어떡해. 나 살찐단 말이야."

"그래? 그럼 내일 먹을까?"

"... 그건 아니지."


말은 투덜거리면서도 이미 손은 냉장고에 있는 소주병을 집어 들고 있었다. 막창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안주다. 막창을 눈 앞에 둔 이상 소주를 마시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1인분도 포장이 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너 먹으라고 사 왔어."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 올 때마다 항상 자기가 더 신난 얼굴을 한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야근을 하거나 약속이 있어서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항상 맛있는 걸 가져왔다(칼퇴하는 날도 맛있는 걸 가져올 때가 많지만). 오늘처럼 대단한 걸 사 오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 음료수 한 잔이나 빵 한 개 같은 소소한 것들이다. 맛있는 걸 먹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오늘은 어떤 걸 가져올까 생각하는 동안 육아의 힘듦을 잠시 잊을 수 있기도 했다.


야근은 어쩔 수 없다 쳐도 가끔은 내가 저녁 약속을 가고 맛있는 걸 사 오는 입장이 되고 싶을 때도 있다. 호야가 내가 옆에 있어야 안 울고 잠을 자는 탓에 나는 출산 후에 저녁 약속을 나가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OT가 있던 날 딱 한 번 저녁에 외출해봤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보는 건물 조명과 저녁 바람이 어찌나 좋던지. 돌아와 보니 역시나 남편의 다크서클이 발밑까지 내려와 있었지만.


내가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답답했을 것 같다. 지금은 남편이 종종 맛있는 걸 던져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나하나는 소소한 음식들이지만 매일같이 쌓인 남편의 마음은 소소하지 않다.


어젯밤 먹은 막창. 한 그릇 뚝딱하고 그만큼의 몸무게를 얻었다.


그동안 남편이 사다준 것들. 더 소소한 것들이 많은데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 1년 9개월 만에 따로 자게 될 줄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