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술을 좋아한다면 남편은 콜라 같은 시원한 음료를 좋아한다(지금도 냉장고에는 포카리스웨트와 사이다가 쟁여 있다). 난 커피 외에 음료는 잘 마시지 않는 데 비해 남편은 결혼 전에 데이트를 할 때도 자주 음료수를 찾았다. 첫 데이트 때도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스무디킹에 간 거였다. 더위를 많이 타서 그런지 대체로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음료를 사 마시는데 어쩔 땐 음식보다 음료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스타벅스와 공차도 남편이 자주 찾는 매장이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스타벅스를 간 적이 별로 없었다. 커피 맛이 거기서 거기지 뭐,라고 생각했고 가격이 비싸서 잘 가지 않았다. 어쩌다 기프티콘이나 기프트 카드를 받을 때만 갔다. 하물며 스타벅스 프리퀀시는... 겨울에 다이어리를 주는 이벤트가 있다는 정도만 알았다.
지금 우리 집에는 프리퀀시를 모아서 장만한 서머레디백과 서머데이쿨러가 나란히 있다. 첫 프리퀀시의 추억은 작년 여름, 품귀 현상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서머레디백을 받을 때였다. 지금처럼 여름 더위가 슬슬 시작될 때였고 생후 5개월이 된 호야가 막 이유식을 먹기 시작했었다. 어느 날 남편이 프리퀀시를 다 모았다고 하더니 나를 끌고 스타벅스 순례를 다니기 시작했다(왜 같이 다녔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 간 날은 재고가 떨어져서 실패하고 다음날 아침 댓바람부터 세 곳을 돌아다녀서 그 귀하다는 서머레디백을 받았다. 문 열기 2시간 전부터 돌아다녔던 걸로 기억한다(우리는 초반에 받아서 그나마 양호한 수준이었다). 매장 앞에는 항상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 프리퀀시의 추억.
내가 신기하게 생각한 건 남편이 스타벅스 음료를 몇 잔 마시지도 않고서 프리퀀시를 쉽게 모았다는 거였다. 지인 몇 명에게서 프리퀀시를 받더니 금세 17잔을 채웠다. 그렇게 남편은 일주일 뒤에 서머레디백을 2개나 더 받았다. 한 개는 나들이 갈 때 호야 짐가방으로 우리가 잘 쓰고 있고 두 개는 가족과 지인에게 줬다.
올해 프리퀀시 증정품인 서머데이쿨러에는 내가 먼저 관심이 갔다. 거기에 먹을 걸 담고 나들이를 가면 좋을 것 같았다.
“올해도 프리퀀시 모을 거야?”
넌지시 남편에게 물었는데 “올해는 별로 안 예쁘던데?”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지인에게 프리퀀시를 모을 깜냥이 안 되기 때문에 ‘올해는 물 건너갔군’ 하고 포기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 쿨러 예쁜가? 모아볼까?” 하더니 거짓말처럼 며칠 만에 17잔을 채웠다. 정작 마신 건 3번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올해는 다행히 예약해서 수령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서 작년처럼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도, 재고가 부족해서 헛수고를 하는 일도 없어졌다. 남편이 예약해놓으면 내가 낮에 시간이 빌 때 받아왔다.
아싸인 나는 인싸인 남편이 이럴 땐 좀 부럽다. 사실 별 거 아닌 걸 수도 있는데 그렇게 소소하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일이 나한테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못할 일이기 때문에. 내 부족한 부분을 남편이 가지고 있어 줘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고맙기도 하다.
며칠 전부터 예약도 선착순이 돼서 아침 7시부터 폰 들고 대기하는 남편. / 이번에도 3개를 모았다(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