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국 삐져서 돌아앉았다. 브런치 작가 1주년이라고 며칠 동안 조각 케이크 노래를 부르기에 냉동실에 남아있는 치즈케이크나 먹자고 했다가 사달이 났다. 치즈케이크든 뭐든 꼭 초에 불을 붙여야겠단다.
"그냥 먹으면 안 돼?"
"케이크만 먹으면 평상시랑 뭐가 달라? 서랍에 초 있으니까 불 붙일 라이터만 있으면 된단 말이야. 라이터 좀 사다 줘."
"...."
귀찮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조각 케이크에 초를 꽂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브런치는 자기가 좋아서 시작했으면서 왜 나보고 축하를 해달라는 건지. 집 앞에서 음료수도 사고 라이터도 살 겸, 호야와 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아내는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하고 마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들깨 미역국은 언제 해주는 거야? 나 생일 지난 지가 언젠데..."
아차, 밀린 미션이 있는 걸 잊고 있었다. 작년에 미역국을 끓여줬더니 올해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들깨 미역국 타령이다. 아무래도 매년 시달리게 생겼다.
"넌 왜 이렇게 손이 많이 가냐."
"뭐? 손이 많이 가~?"
아내가 도끼눈을 떴다.밖에서는 쭈그리 같으면서 집에서는 아주 기세 등등이다. '손이 많이 가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다'라는 따발총 아내의 말을 한참 동안 들은 후 호야를 유모차에 태워 터덜터덜 집 앞 카페로 갔다. 시원한 음료수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옆에 진열된 조각 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모양도 맛도 제각각인 케이크를 보자 아내 생각이 났다.
"저, 여기 당근 케이크도 하나 포장해 주세요."
나는 당근을 좋아하지 않지만 요즘 채소에 열 올리는 아내가 보면 좋아할 것 같다. 포장된 조각 케이크를 유모차 밑 칸에 올려놨다.
"어? 이게 뭐야?"
마트 앞에서 만난 아내가 유모차에 있는 조각 케이크를 보더니 물었다. 어느새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 있다. 이럴 때 보면 참 단순하다.
우리는 저녁에 호야를 재운 다음 거실 아기매트 위에 앉아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아내는 이제야 만족한 듯 보인다. 초가 다 타들어가도록 사진을 찍어대더니 케이크가 맛있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내는 뭔가를 맛있게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해 보인다. 나로서는 귀찮은 미션 중 하나가 끝나서 다행스럽다. 들깨 미역국은 어떻게 끓여야 하는 건지 연구 좀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