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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May 17. 2021

짠돌이 남편


우리 집 돈 관리는 남편이 한다. 나도 돈을 안 쓰는 건 나름 자신 있다. 작년에도 나를 위해 산 물건은 외장하드(그것도 호야 사진을 저장하기 위해서이긴 하지만)와 책 몇 권뿐이었다. 뭐 사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으니까 갖고 싶은 게 있었대도 웬만하면 안 샀을 테지만 원체 물건 욕심이 없는 편이기도 하다. 물건 욕심이 없는 대신 여행 욕심이 있는 스타일이다. 뭔가를 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다. 게다가 작년엔 밀착 육아를 할 때라 딱히 필요한 물건도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냥 돈을 안 쓸 뿐이지 실속이 없다.


그에 비해 남편은 타고난 살림꾼이다. 나랑 비교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그런 것 같다. 이것저것 비교하고 따져서 좋은 물건을 싸게 사는 걸 잘한다. 작년 말에 첫 살림살이를 살 때도 세탁기며 냉장고, 인덕션, 청소기, 행거 등을 다 남편이 알아보고 싼 가격에 구입해줬다. 그리고 아직까지 높은 만족도를 유지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사용할수록 만족도가 커진다. 남편이 구입하는 물건은 실패한 적이 거의 없다. 여러모로 나보다 낫기 때문에 남편의 돈 관리에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입장이다.


남편의 알뜰함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가끔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한 번은 내게 핸드폰 충전 케이블을 챙겨주길래 의아하게 쳐다봤더니 출근하면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에 연결해서 핸드폰을 충전하란다. 집에서 충전하는 전기세를 아끼겠다고. 엄마도 여동생도 짠순이들이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속으로 ‘이런 사람도 있구나' 경이로워하며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었다.


어제는 육퇴 후 곱창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저녁에 나는 호야를 재우고 남편은 포장을 하러 집 앞 곱창집을 다녀왔다. 비 오는 거리를 왕복 30분 동안 걸어야 했지만 배달비를 아끼겠다는 남편의 마음에는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포장을 해서 돌아온 남편은 밝은 얼굴로 말했다.


"○○(내 이름)! 나 배달비도 아끼고 지역화폐로 결제해서 10%도 할인받았다! “


상기된 얼굴로 오늘 할인받은 금액이 얼만지 백 원 단위까지 읊는 남편에게 물었다.


“돈 아끼는 게 그렇게 재밌어?”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고 한 질문이었다. “응 재밌어.”라고 할 줄 알았던 남편의 대답은 내 예상과 달랐다.


“재밌는 건 아닌데. 돈이 많으면 안 이러지.”


순간 마음이 짠했다. 그동안 남편이 되도록 싸고 좋은 걸 사기 위해서 열심히 알아본 게 난 왜 남편이 좋아서 그런다고 생각했을까? 돌이켜보니 남편은 물건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진급 선물로 사달라고 해서 내가 사준 톰브라운 클러치백을 보고 행복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집돌이라 여행 욕심은 없지만 물건 욕심은 있는 스타일이다. 나랑은 정반대다. 그런 남편인데 가정이 생겼다는 이유로 자기 물건 사는 걸 거의 못 봤다. 겨울 옷 같은 경우도 몇 벌 없어서 내가 아무리 사라고 해도 안 사고 결국 여름이 됐다. 나처럼 사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안 사는 건 줄 알았는데 사고 싶은 욕구를 참았던 거였다니. 단순하게 ‘짠돌이 남편’이라고만 생각했던 게 미안해진다. ‘짠돌이’는 당연한 게 아니라 고마워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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