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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May 05. 2021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호야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 피아노 연습을 하고, 글쓰기 수업을 듣고, 스페인어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나니 어린이집 픽업 가기 30분 전이다. 개지 않은 빨래가 눈 앞에 쌓여있지만 꿋꿋하게 브런치에 접속했다. 오늘도 집안일은 뒷전이다.


주부로서 나는 몇 점일까 생각해봤다. 집이 (어쨌든) 집의 꼴을 하고 있고, 가족의 끼니를 (나름) 매번 챙기고 있으니 80점 정도는 되지 않을까? 아마 남편이 이걸 보면 뒷목 잡고 이렇게 한마디 할 것 같다. "뭐? 80점? 8점 아니고?"


집안일을 의식하기 시작한 건 호야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부터다. 그 전에는 그냥 눈앞에 닥친 일을 하다 보면 남편의 퇴근시간이었고, 집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나의 퀭한 몰골 하나로 모든 게 용서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집이 엉망이면 "그 많은 시간 동안 뭐했어?"라는 질문의 탈을 쓴 잔소리가 돌아왔다.


집안일을 요리(장보기 포함), 청소(장난감 치우기, 청소기 돌리기), 빨래,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일반, 음식, 재활용), 이렇게 5개로 나눈다면, 이 중에 하루에 한두 가지만 (면피용으로) 하는 편이다. 살림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보니 살림까지 손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다. (음, 쓰고 보니 80점은 내가 봐도 너무 후했던 것 같다. 70점 정도로 해야겠다)


얼마 전에는 집 꼴을 보고 남편 목소리가 약간 커진 적이 있다. 위의 집안일 5가지 중 하나도 못한 날이라 내가 봐도 집이 엉망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감기 몸살 때문에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물론 그 컨디션으로 브런치를 붙잡고 있었으니 남편 입장에서는 "글 쓸 힘은 있고 집 정리할 힘은 없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거실에 장난감이 널브러진 건 기본이고 설거짓거리며 정리되지 않은 재활용 쓰레기가 부엌에 잔뜩 쌓여 있었다. 웬만해선 화를 내지 않는 남편이지만 그날은 한마디를 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내가 봐도 심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뜻밖의 수확(?)이 생겼다. 남편의 기대치가 확 낮아졌다는 거다(더 낮아질 기대치가 남아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얼마 전에는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비운 일 하나로 "훌륭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집이 얼마나 더러울 수 있는지를 확인한 후 남편은 꽤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덕분에 작은 일을 해도 티가 나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득이 됐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는 깨끗한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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