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은 기억하고 싶어서 기억하는 날이 아니라, 기억할 수밖에 없어서 기억하는 날이 됐다. 하늘도 기억하는 날.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다. 낮에는 비가 온다고 한다.
7년이 흘렀지만 그때의 슬픔은 그대로다. 아니 더 커졌다. 엄마가 되고 세월호 사건은 이전보다 더 큰 슬픔이 됐다. 희생자들과 아무 연관이 없는 나도 이런데, 세월호 유가족 분들은 오늘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있을까.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날 뒤늦게 티브이로 사고 장면을 보면서, 그렇게 천천히 가라앉는 배에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는지 믿기지 않아 한참을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임시 합동분향소에서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영정사진을 보고 머리털이 쭈뼛 섰다. 그토록 많은 어린 학생들의 사진에 검정 리본이 달려 있는 것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언젠가 찾아간 '단원고 4.16기억교실'에서는 복도 끝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값싼 눈물이 죄스러웠지만 솟구치는 눈물을 틀어막을 방법이 없었다. 아이들의 교실을 옮겨놓은 공간에는 책상마다 사진이나 꽃, 편지, 선물 등이 가득했다. 아이들의 꿈이 담긴 기록도 있었다. 그날은 날씨가 좋아서 더 슬펐다. 세월호 아이들은 기억교실이 아니라, 그 화창한 길을 걷고 있어야 했다.
몇 년 전에는 세월호 영화 '그날, 바다'를 보러 갔었다. 생각 같아선 영화표 10장은 사서 보고 싶었지만 주머니가 빈약해 3장을 사서 혼자서 봤다. 어떤 내용일지 짐작은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용이 궁금했다기보다는 그날을 잊지 않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또 한 번의 다짐이었던 것 같다. 내레이션을 맡은 정우성의 목소리는 편안했고, 영화가 끝난 후 불이 켜지기 전까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월호는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이었다. 네가 흐리멍덩하게 세상을 사는 바람에, 흐리멍덩한 세상에서 이런 비극이 일어난 거라고 세월호는 끊임없이 나를 질책했다. '조금씩 꾸준히 그렇게 평생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다짐을 한 것도 세월호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 내 안에서 살게 해주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진실이기에 300명의 목숨을 억울하게 앗아가고도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걸까. 죄책감은 충분히 받았다. 이제는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