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에 직장 동기 H를 만났다. H와 나는 동갑내기였고,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하면서 부쩍 가까워진 사이였다. 항상 아기들을 데리고 만나다가, 그날은 아기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예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와, 우리 이제 이런 것도 먹을 수 있는 거야?"
가지와 치즈가 들어간 파니니가 샐러드와 함께 자태를 뽐냈다. 여유로운 시간이 주는 감동을 허겁지겁 카메라에 담았다.
H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다이어트 얘기가 나왔다. 그녀는 출산 이후에 두 달 만에 10kg를 뺀 쾌거를 이룬 경험이 있었다. 나도 한창 다이어트에 열을 올릴 때 4개월 동안 6kg를 뺐었다. 지금은 둘 다 비슷하게 60kg 언저리를 맴돌았다. 정체된 몸무게에 H도 나도 끙끙거렸다.
"다이어트는 사실 내기를 해야 잘 빠지는데 말이야."
H는 예전에 친구들과 내기를 해서 다이어트에 성공한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도 할까?"
나는 말해놓고 아차 싶었다. H는 두 달 만에 10kg를 뺀 독종이다. 둘 다 성공하거나 나만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뱉은 말을 무를까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눈을 질끈 감았다. H는 좋다며 눈을 빛냈다. 우리는 잃을 수 없을 만큼 아까울 만한, 적당한 금액으로 다이어트 내기를 시작했다. 목표는 한 달 반 동안 55kg까지 감량하기였다. 매주 월요일마다 서로 몸무게를 찍어 중간점검을 하기로 했다.
왜 다이어트를 하려고 하면 더 배가 고파지는 건지. 그날 이후로 평상시보다 더 많이 먹었다.
돌아오는 월요일 아침에 H가 체중계에 올라간 사진을 찍어 보냈다. 59kg였다. 부랴부랴 체중계 위에 올라가 보니 62... 화들짝 놀라 체중계에서 내려왔다.
"나 망한 것 같은데... 저녁에 찍어서 보내도 될까?"
"물론이야 ㅋㅋ 조급함이 느껴진다."
그날 점심과 저녁을 굶고 다시 체중계에 올랐다. 61kg가 나왔다. H는 착하게도 붓기 때문일 거라고 나를 위로해줬다.
그 후로 식욕을 잃었다. 먹는 양이 반 정도 줄었던 것 같다. 돈을 잃을 생각을 하면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내기에서 지면 자괴감이 상당할 것 같았다. 걸핏하면 체중계 위에 올라가 몸무게를 확인했고 어떻게 하면 더 가볍게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마침 채식을 시도하는 시기와 맞물렸다).
그렇게 4일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58.95kg라는 숫자가 찍혔다. 출산 후에 59kg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는데 5 옆에 찍힌 8이라는 숫자를 보고 감격해서 펄쩍펄쩍 뛰었다.
'이러다가 정말 55kg 되는 거 아니야?'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앞으로 1주일에 1kg씩 빼면 된다. 심장이 벌써부터 설레발을 치기 시작한다. 오늘 점심에는 비장하게 냉장고에서 오이 하나를 꺼내 마요네즈를 찍어서 먹었다. 배가 고프지만 저녁때까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