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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Apr 10. 2022

나들이는 힘들어 2

생후 27개월 때의 기록


드디어 벚꽃이 폈다. 벚꽃은 그 수많은 얇은 꽃잎 때문인지 낮에 봐도 밤에 봐도 황홀하다. 낮에는 눈부시게, 밤에는 은은하게 빛을 품고 있다. 꽃이 질 때조차 몽환적이다. 개화하고 2주만 지나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벚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4월 둘째 주였던 이번 주는 벚꽃이 하루가 다르게 터지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평일에는 벚꽃을 즐길 시간이 별로 없으니 출퇴근할 때 잠깐씩 기웃대며 그 변화를 바라볼 뿐이었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다시 주민센터로 돌아갈 때는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이 좋은 날씨와 풍경을 두고 들어가야 하다니. 주말에는 이것들을 모두 만끽하리라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주말 아침. 내가 원한 여행지의 조건은 세 가지였다. 벚꽃을 볼 수 있을 것, 텐트를 칠 수 있을 것, 호야가 공 차고 놀기에 적당할 것. 우리는 강천섬으로 가기로 했다. 남한강에 뜬 강천섬은 잔디 깔린 토지가 탁 트여 있어 불어오는 바람에서 자연의 향기가 나는 곳이다.


우리 가족이 강천섬을 찾은 건 이번에 세 번째다. 남편과 나는 그대로인데(물론 좀 늙긴 했지만…) 호야는 올 때마다 눈부시게 성장했다. 재작년 가을에 처음 방문했을 땐 호야가 태어난 지 10개월 됐을 때라서 아직 걷지 못할 때였다. 큰 유모차를 끌고 갔고, 돗자리를 펴고 주로 그 위에서만 놀았다. 그때 여기저기 텐트를 치고 노는 사람들을 보고 ‘내년에는 꼭 우리도 텐트를 가져와서 놀아야지’ 생각했는데 정말로 일 년 뒤에 우리의 첫 텐트(원터치 텐트!)를 처음 편 곳이 이곳이었다. 그 전 해보다 작은 유모차에 호야를 앉혀서 갔고, 호야는 넓은 잔디 위를 열심히 누비며 걸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오늘, 벚꽃구경 당일치기 캠핑을 위해 이곳을 다시 찾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호야가 훨씬 날쌘돌이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유모차 없이 갔다는 것이다.


주차장에서 섬까지는 15분 정도 걸어야 한다. 그 길을 호야가 잘 따라와 줄 거라고 생각한 게 실수였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남편을 먼저 보낸 게 나의 두 번째 실수였다. 호야는 중간중간 꽃도 보고, 경치도 구경하느라 좀체 이동할 생각을 안 했다. 그나마 앞으로 조금씩 가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수시로 옆길로 새거나 왔던 길을 되돌아 뛰어갔다. 그런 호야를 붙잡으면 그 자리에 누워버렸다.

' 길이 이렇게 멀었나....'

텐트랑 공을 들고 있어서 호야를 이끄는 게 더 쉽지 않았다.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서만 족히 30분은 씨름했고, 텐트를 펴고 자리를 잡기까지 1시간이 걸렸다.


자리를 잡은 뒤로는 시간이 휘리릭 꿈처럼 지나갔다. 그토록 벼르던 벚꽃도 실컷 봤다. 문제는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다행히 이번엔 남편과 둘이라 들어갈 때만큼 오래 걸리진 않았다. 하지만 호야를 차에 태우고 옆자리에 앉은 남편의 표정은 몹시 어둡고 지쳐있었다.


'다음 주도 아직 벚꽃이 피어 있을 것 같은데.'

'다음 주도 나들이를 가고 싶은데.'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생각했지만 남편에게 말할 엄두가 안 난다.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밖에 나오면 충전이 되는 사람이지만 집돌이 남편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음 주는 호야랑 둘이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
꽃도 봐야 하고 경치도 구경해야 하고 눕기도 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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