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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Jun 19. 2020

상처가 되는 순간들

글로 치유하기. 익명의 사연들 1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씁니다.

그 누군가는 내가 될 수도,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중학생쯤 된 소녀가 거실에 앉아 울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다. 둘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아버지는 소녀를 내려다보고, 소녀는 바닥을 내려다본다.

길고 긴 꾸지람 끝에 소녀가 울먹이며 말한다.

"나 진짜 힘들단 말이야."

아버지는 판단한다.

"내가 봤을 땐 네가 힘든 것 같지 않아."

소녀는 순간 숨이 막혀옴을 느낀다. 그 말투가 너무나 단호해서 소녀는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흘러나오던 눈물도 머쓱해져서 도로 들어갔다. 소녀도 사실 무엇이 힘든 건지 딱히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냥 투정이었을지도 몰랐다. "힘들다"는 말이 어떤 당위성도 지니지 못한 채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아버지의 판단으로 그 힘듦은 무시되었다.

소녀는 자신이 있는 거실이 너무 넓게 느껴졌다. 그 넓은 공간 속에서 어찌할 수 없이 혼자임을 느꼈다.






초등학생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그림 그리기가 좋았다. 스케치북에 나무를 그리는 게 좋았다.

하루는 스케치북과 연필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한참 동안 집 앞에 있는 나무 네다섯 그루를 그렸다.

뭔가 부족해 보이긴 했지만 꽤 흡족했다. 아이는 스케치북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보여줬다.

아버지는 그림을 보더니 아이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내가 봤을 땐 네가 열심히 그리지 않은 것 같다."

아이는 그 후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열심히 그린다'는 게 어떤 건지 몰랐고, '열심히 그리지 않은 그림'을 보여준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기를 키우는 여자가 있다. 육아를 하다가 몸도 마음도 지친 어느 날 여자는 육아가 힘들다고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는 옅게 비웃는다.

"아기는 엄마가 키우는 게 당연하잖니. 그렇게 힘들면서 엄마가 되는 거 아니니."

자기 아기를 보는 건 당연한 일이고 누구나 하는 일이다. 당연한 일을 하면 힘들다고 하면 안 되는 걸까.

'그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일의 고됨을 인정받기란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다.'

여자는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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