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호야가 어린이집에 다닌 지 한 달 정도 됐을 무렵, 이제는 어린이집에 완전히 적응했구나 하고 안심할 즈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면서 '복직 전 버킷리스트'를 써본 적이 있다. 독립 출판하기, 책 50권 읽기(현실성 없는 이상적인 목표...), 100대 명산 10곳 가기(다녀오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5곳만 다녀옴), 스페인어 공부하기(바짝 하다가 손 놓은 상태) 등 10개 정도를 써놨는데 그중 봉사활동하기도 있었다.
꼭 한번 봉사하러 가보고 싶었던 기관은 코로나 때문에 봉사자 출입이 불가능했다. 전에 방문했던 다른 기관을 알아보다가 곧 그만두었다. 집에 아기도 있는데 대면 봉사를 한다는 게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그렇게 흐지부지된 채 몇 달을 보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혼자 휴게소에 다녀온 그날이다). 전에 써놓은 버킷리스트를 펼쳐보니 봉사활동하기에는 이미 X 표시까지 되어 있었다(포기가 빠른 나란 여자...).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워 vms 홈페이지에 들어가 내가 사는 지역의 봉사자 모집 부분을 검색해봤다. 노인복지관에서 반찬 배달 봉사자를 구한다는 글이 눈에 쏙 들어왔다.
화요일 비대면 밑반찬 정기 배달 자원봉사자 모집
코로나로 인해 휴관하게 되면서 어르신들께 일주일치 반찬을 직접 배달해드리는 모양이었다. 비대면 봉사인 것도 마음에 들었고 복지관 위치도 호야가 다니는 어린이집 바로 옆이라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홈페이지에 신청을 하자 곧 사회복지사에게 전화가 왔다. 다음 주 화요일(바로 오늘)부터 와주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맞이한 봉사 첫날. 호야를 어린이집에 내려주고 근처에서 잠깐 시간을 때우다가 약속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복지관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이미 다른 봉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봉사자 한 분이 있었다(내가 그곳에 머무는 10분 남짓 동안 두 명의 봉사자가 더 다녀갔다). 사회복지사의 안내에 따라 봉사 신청서를 작성하고, 복지관 안내책자가 들어간 꾸러미를 받은 다음, 내가 할 봉사(반찬 배달) 안내문과 배달을 갈 명단(주소)을 받았다. 배달을 갈 곳은 두 곳뿐이었다. 반찬이 담긴 봉지 두 개를 들고 복지관을 나왔다.
반찬이 담긴 봉지 두 개.
두 곳 다 주차장이 협소한 빌라라 차 댈 곳을 찾기가 번거로웠던 점만 제외하면 내가 봉사를 했는지조차 인식하기 힘들 만큼 간단한 일이었다. 반찬이 든 봉지를 어르신 댁 문고리에 걸고, 사진을 찍어서 사회복지사에게 보고하고, 벨을 눌러 어르신께 배달이 왔음을 알리면 끝. 40분 만에 일을 끝내고 귀가했다(자차를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 배달을 했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렸겠지만).
작은 봉사지만 마음이 따뜻해지기엔 충분했다. 첫 번째 배달을 간 곳에서 벨을 눌러 배달이 왔음을 외쳐 알려드린 후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곧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고맙습니다."
모퉁이에 가려 내 모습이 보이지 않으셨을 텐데도 내게 인사를 해주셨다. 나는 반찬을 준비한 것도 아니고 배달만 했을 뿐이라 드는 시간에 비교하면 큰 보람을 느낀 셈이다. 두 번째 들른 곳에서도 어르신이 반찬을 받으러 금방 나오시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돌아와 복지관에서 받았던 꾸러미를 열어보니 복지관 안내책자 외에도 대일밴드 같은 소소한 것들이 더 들어 있었다. 뒷면이 거울로 된 자원봉사자증도 있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마음은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자원봉사자가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주일에 2시간(실제로는 40분)으로 이렇게 감사 인사를 많이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쯤 되니 감사 인사를 받고 싶어서 봉사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웬만해선 고맙다는 말을 듣기가 힘든 세상이니까. 이유야 어쨌건 다음 주 화요일을 기다리게 되리란 사실은 분명해졌다.
복지관 자원봉사자증과 함께 쓰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