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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Aug 25. 2021

오르골 자장가를 듣던 밤

생후 20개월 때의 기록


'그러고 보니 재접근기가 언제지?'


복직 전에 호야의 10번째 원더윅스가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다시 어린이집도 잘 가고 나한테 매달리는 일도 줄었다(잠은 아직 가끔 늦게 자지만...). 그런데 '재접근기'라는 게 있다는 걸 언젠가 읽은 기억이 났다.


재접근기
양육자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하기 전에 양육자에게 소속감과 안정감을 재확인하는 시기. 독립을 위해 나아가기 전에 양육자로부터 충분한 정신적 에너지를 공급받고자 하는(=양육자 입장에서는 에너지를 뺏기는) 시기.


돌 이후로 제법 엄마와 분리해서 혼자 잘 지내던 아기가 그 시기가 되면 다시 세계에 불안을 느껴 엄마에게 붙어 있으려 한다고 했다. 원더윅스때 어린이집에 안 들어가려고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재접근기 때도 그런 일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됐다. 그때는 들어갈 때까지 밖에서 놀아줄 수라도 있었지만 복직하면 그러기 힘드니까.


'24개월 전후였나?'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니 이럴 수가, 재접근기는 16~24개월 사이에 찾아온다고 한다. 16개월부터라면... 얼마 전에 그 난리난리가 재접근기였을 수도 있겠다. 나보고 계속 옆에 있으라고 하고, 부엌에 있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던 시기.... 밥솥에 밥을 안치는 그 잠깐도 바지를 잡아당기며 떼를 쓰는 바람에 바지가 벗겨진 적도 여러 번이었다. 바지는 벗겨지고, 나는 취사 버튼을 겨우 누르고, 아기는 울고.... 


원더윅스든 재접근기든 그 절정은 생후 19개월 때 일주일 정도였다. 그 무렵에 밤잠을 평소보다 늦게 잤는데 그냥 잠만 늦게 자는 게 아니라 밤새 떼를 써서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멘탈을 털리다가 보챔이 살짝 사그라들던 날이 기억난다. 부슬비가 내리는 밤이었고, 호야랑 나는 거실 아기 매트 위에 있었다. 나는 창밖을 보고 앉아있었고 호야는 내 다리에 머리를 베고 누워 있었다. 우리는 같이 창밖을 바라봤다.


'오늘은 웬일로 떼를 안 쓰지?'


안 자고 버티는 것뿐이라면 한결 견딜 만하다. 나는 멜론에서 오르골 자장가를 검색해 호야랑 같이 들었다. 창밖 도로에는 차들이 붉고 노란 불빛들을 반짝반짝 빛내며 지나갔다. 반짝이는 자동차의 불빛과 오르골 자장가는 썩 괜찮은 조합이었다. 내 다리에 맞닿은 호야의 머리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아기의 체온을 느끼며, 내게 이렇게 소중한 존재가 생겼다는 것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재접근기라는 힘든 시기에도 문득문득 행복이 물밀 때가 있다. '가슴이 벅차다'는 건 호야가 알려준 감정이었다.


아무튼 다행이다. 재접근기가 지나서 말이다(지났다고 믿고 싶다). 우리는 바뀐 일상에도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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