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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Aug 10. 2021

네가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

생후 19개월 때의 기록


생후 18개월 때 찾아온 원더윅스는 마지막 원더윅스답게 강력했다. 호야는 울면서 드러눕는 '눕기 공격' 외에도 여러 가지 공격 기술을 선보였다. 바로  '안아 공격'과(앉은 채로 안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안고 일어서야 한다), '안 자' 공격이다. (또  있다. '안 먹어' 공격.)


'안아 공격'이 최대치인 날은 호야를 안고 있어도 호야가 우는 이다. 안으면 울고, 내려놓으면 더 울고. 정말 환장한다. 버둥거리기까지 하면 어깻죽지가 찢어질 것 같다. 그럴 땐 막걸리 한 잔을 쭉 들이켜고(육아 필수템은 뭐니 뭐니 해도 알코올) 속으로 한 가지 생각만 반복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11시 반에 잠든 날도 잊을 수 없다. 분명히 8시쯤 하품을 하며 눈을 비빈 아기가 3시간 반 동안 남편과 나에게 희망 고문을 한 것이다. 그렇게 장기전이 되면 남편도 나도 지쳐서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날도 울고 보채는 은호를 달래느라 치즈 몇 개를 줬는데 4개째 주는 순간 "달라는 대로 다 주냐. 해달라는 거 다 해주니까 계속 보채는 거 아니냐. 안아주지도 마라. 네가 자꾸 안아주니까 저러는 거다." 남편의 말에 결국 폭풍 부부싸움을 했다(사실 치즈가 4개째라도 먹다 만 것도 있어서 실제로는 3개짼데...). 호야의 "안아" 공격 대상은 항상 나이기 때문에 안 그래도 내 몸만 축나는데 남편이 내 힘듦을 알아주기는커녕 구박을 하면 그 서러움은... 말로 못한다. 그날은 결국 호야보다 내가 더 크게 우는 바람에 호야가 울음을 그쳤다.


이제는 보챔이 가장 심한 시기는 지나간 것 같다. 전처럼 "안아"를 자주 하지 않고, 드러눕는 일도 줄고, 밤잠 시간도 점점 당겨지고 있다. 하지만 호야는 아직 원더윅스의 끝을 잡고 있다.


어제도 8시부터 재우기 시작했는데 결국 9시 반이 돼서야 잠들었다. 시작은 좋았다. 침대에 얌전히 눕길래 나도 살짝 기대를 하며 호야 옆에 누웠다. 하지만 호야는 곧 벌떡 일어나더니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말, "안아"를 하며 내게 다가왔다.

 "싫어~"

최근에는 나도 버틴다. 호야가 "안아"라고 할 때마다 "싫은데?"라고 맞받아친다. 안아라, 싫다, 가 몇 번 오간 후 호야는 체념한 듯 내 손을 잡고 거실로 나가더니 창문에 달라붙어 자동차한테 인사를 .

"안녕~ 삐뽀삐뽀~ 잘 자~(호야는 자동차를 보면 삐뽀삐뽀라고 한다)"

"삐뽀삐뽀도 졸리다고 자러 가네~ 우리도 자러 갈까?"

운이 좋으면 인사만 하고 바로 자러 가는데 어제는 그렇지 않았다.

"이제 방에 갈까? 폭신폭신한 침대에 누울까?" 하면 이이이잉 하면서 힘찬 도리질을 했다.


거실을 배회하시호야님이 갑자기 또 "안아"를 했다. 이번 "안아"아까와 달리, 안기 전에는 절대 울음을 그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할 수 없이 호야를 안고 일어서니 팔을 뻗어 냉장고 쪽을 가리킨다. 이 시간에 또 뭘 먹겠다는 건가.... 냉장고 문을 열어주자 요구르트를 가리키며 "이거"란다. 결국 요구르트 한 개 득템. 이것만 먹고 자겠지 했는데 어림없다. "안아"와 냉장고 가리킴, 요구르트 득템이 한 번 더 반복됐다. 그리고 침대에 한번 누움으로써 희망고문의 강도를 높였다. 잠깐 눕더니 다시 거실로 나가 이번에는 엄마 아빠 손을 양손에 하나씩 잡고 거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남편과 내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었다.


거실을 돌아다니다가, 나란히 앉아서 서로 어깨도 주무르다가, 좁은 아기 텐트에 셋이 들어가 나란히 누웠다(물론 호야가 들어오라고 해서).

"호야야 이제 방에 갈까? 폭신폭신한 침대에 누울까?"는 더 이상 의식을 거치지 않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입밖에 튀어나왔다. 그렇게 9시 반이 가까워질 무렵, 드디어 호야가 "방!!" 하더니 방으로 뛰어갔다. 남편과 나는 호야의 마음이 바뀌지 않도록 뛰어가는 호야의 그림자처럼 뒤에 붙어 자신의 자리(남편은 어른 침대, 나는 아기 침대 호야 옆)에 신속하게 누운 뒤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요즘은 항상 이렇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방!"이라고 외치며 방으로 들어가면 호야는 그제야 잠이 든다. 잠도 이제는 내가 재워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자고 싶어야 잔다. 그렇게 "방"을 외치고 들어가면 거의 백 프로 금방 잠든다.


난 이미 호야가 잠들기 전에 기절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 6시였고 호야가 일어나라며 내 몸 밑으로 손과 발을 집어넣고 있었다. 벌써 아침이라니. 8시간 반이나 잔 건데 체감으로는 5시간밖에 못 잔 것 같다. 남편은 호야가 잠든 후에 거실로 나가 한 시간 반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누렸다고 한다. 호야가 잠든 후에 안 자고 살아남는 게 요즘 우리 부부의 암묵적 미션이기 때문에 어젯밤은 내가 무언의 1패를 한 셈이다.


점점 저녁이 가까워진다. 오늘 호야는 몇 시에 자게 될까. 호야가 잠든 후 살아남는 건 누구일까.

 

오늘 아침. 내가 뽀로로 캐릭터를 줄지어 눕히자 호야가 이불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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