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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Jun 22. 2021

생후 18개월, 드러눕기 좋은 나이


18이라는 욕이 나와서 18개월이라는 마의 18개월에 들어선 지 10일째. 다행히 아직 욕이 나오진 않았지만 "얘가 왜 이래 진짜~"나 "진상이네 아주~", "별나다 별나~"란 말이 입에 붙긴 했다. 밥 먹을 때 뽀로로 보여달라고 꽥꽥거리고(밥 먹을 때 너무 뽀로로만 보여준 것 같아서 요즘 안 보여주려고 노력 중이다 ㅜㅜ), 가위 같은 위험한 물건을 못 만지게 하면 비명부터 지른다. 전에는 내 방(겸 옷방 겸 창고)에 못 들어오게 하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늘은 왜 못 들어가게 하냐며 바닥에 드러누우셨다. 자기 마음대로 못하면 짜증이 솟구쳐 오르나 보다.


전과 달리 뭔가를 의도하고 행동하는 게 보여서 깜짝 놀랄 때도 있다. 내가 뽀뽀해달라고 얼굴을 들이밀면 일부러 아빠한테 가서 뽀뽀하기도 하고(밀당 시전), 내가 호 해주는 게 좋은지 장난감에 두 번째 손가락을 갖다 대더니 "아파" 하며 내게 손가락을 내미는 행동을 반복하기도 했다.


자기주장이 심해지고 새로운 능력을 습득하는 모양새가 어쩐지 원더 윅스일 것 같다. 오랜만에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책을 펼쳤다.


원더 윅스는 생후 20개월 동안 10단계에 걸쳐 찾아오는 정신적 성장 급등기로, 아기는 그 시기에 발달을 겪으면서 찾아오는 불안감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기에겐 부모의 손길이 더욱 필요한 시기이고, 부모에겐 아기를 돌보기 가장 힘든 시기다. 10단계 도약이 끝나면 아기는 어느 정도 '완전한' 인간이 된다고 한다.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는 350p에 걸쳐 원더 윅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돌 때까지는 도약 시기가 찾아올 때마다(아기가 유난히 보챌 때마다) 책을 꼬박꼬박 챙겨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아기를 이해하게 되면 힘든 시간이 버틸 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간이 곧 끝난다는 게 제일 큰 힘이 됐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를 보채고 울던 아기는 정말로 그 시기가 지나면 태풍 후 찾아오는 고요함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순한 아기가 됐다.


책을 보니 돌 때가 도약 8단계(생후 12개월 전후)였다. 내가 모르는 사이 도약 9단계(생후 14~15개월)가 지났고, 아무래도 지금이 마지막 도약(생후 17개월 전후)인 것 같았다. 비장하게 오랜만에 연필을 들었다. 호야를 이해해서 내 마음이 전보다 넓어지기를 바라며. 역시나, 첫째 줄부터 끄덕이며 밑줄을 좍좍 긋기 시작했다.


-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시기이다. 따라서 그림책을 읽어주면 이해한다. (그래서 그렇게 그림책을 들고 오는 거니?)

- 적극적으로 주변을 탐색하려고 하므로 하루 종일 집에서만 노는 건 아기에게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고 보니 밖에 있을 때 보다 집에 있을 때 더 난폭(?)해졌다)

- 말귀를 알아들으므로 놀이방에서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다. (요즘 어린이집에서 더 잘 웃는 것 같긴 하다)

- 이 시기가 되면 아기는 간단한 말과 몸짓으로 우리와 의사소통할 수 있다. 아기의 몸짓도 언어로 이해하고 몸짓으로 하는 의사표현을 존중하고 반응해줘야 한다. (말도 몸짓도 늘었다 시끄럽고 정신없어졌다)


이밖에 '엄마를 붙잡고 늘어진다', '과장되게 버릇없이 군다', '잘 먹지 않는다' 등 구구절절 공감되는 내용이 이어졌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서 엄마를 자극하고, 거짓말을 하고, 스스로 몸을 숨기고 찾으라고 하고, 새를 보고 손을 흔들고....


이 시기에 아기는 자아가 싹트면서 비로소 '나'와 '너'를 인식하게 된다고 한다. 자신과 엄마 아빠를 비교하고 차이와 공통점을 알게된다. 자기 자신에게 제일 관심을 쏟는다. 자신이 신체의 주인임을 발견하면서 자기 일은 자기가 결정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일상의 규칙도 배우게 된다. 양심이 형성되는 시기라 다양한 행동을 해보면서 어떤 행동이 용납되고 안 되는지를 배우기 때문에 엄마의 일관적인 반응도 중요하다고 한다.


와 정말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구나. 이 정도로 바쁘다면 바닥에 드러눕는 것쯤이야.... 책의 마지막에는 도약이 끝날 때쯤 이제는 아기에게 행동 규범을 알려주고,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 줘야 한다고 한다(그래야 앞으로 수월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단다). 아기가 재능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도 주고... 이래저래 할 게(하라는 게) 많다. 그래도 원더 윅스가 어느덧 마지막 단계라니, 감개무량하다(정말로). 10단계 원윅이 끝나면 파티라도 해야겠다.


드러눕기 / 힘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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