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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Jun 13. 2021

나도 이제 아줌마구나 느낀 날

아줌마: 주로 '결혼한 여자'를 평범하게 부르는 말. 근대 한국사회에서는 긍정과 부정이 함께 섞인 '억척스럽고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여성'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위키백과)


사전을 보면 인식하지 못했을 뿐 난 결혼을 했으니 이미 아줌마다. 하지만 스스로 '와 나 아줌마네' 처음 생각한 건 바로 얼마 전이었다.


'아줌마'  난 강한 생활력과 수다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둘 다 나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제껏 내 앞가림만 겨우 할 수 있을 정도의 생활력밖에는 없었고 특히 수다는, 예컨대 지하철에서 서로 초면인 아줌마 두 분이 스스럼없이 수다 떠는 모습 같은 것인데, 범접할 수 없는 경지로 느낄 뿐 내가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수다 떠는 걸 즐겁게 느끼지 못하는 변변찮은 기질 탓도 있다(수다 떨 줄 몰라서 이렇게 혼자 틀어박혀 글을 쓰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스스로를 아줌마라고 느낀 곳은 지하철은 아니고 미용실이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다. 임신한 이후 처음이니까 2년이 훌쩍 넘었다. 임신 기간과 모유수유 기간에는 일부러 발걸음을 하지 않았고 모유수유가 끝난 이후에는 내려놓고 산 기간이 오래되다 보니 딱히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머리는 점점 자라 허리까지 내려왔다. 이제는 머리를 묶으면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뒤통수가 아팠다. 역시 어디가 아프거나 불편해야 움직이는 성격이다. 그제야 머리를 좀 잘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네 미용실을 검색해보니 평이 다 고만고만해서 아무 곳에 들어갔다. 건물 2층에 자리한 작은 미용실로 직원은 미용사와 보조 미용사 이렇게 명이 있었다. 미용실에 들어선 나는 마치 문명의 혜택을 처음 받아보는 원시인이 된 기분이었다. 푸석푸석하고 긴 머리카락 위로 미용실 조명이 처연하게 쏟아졌다. 의자에 앉아 조금 기다리니 보조 미용사가 다가왔다.


"샴푸 해드릴게요."


난 바로 손사래를 쳤다.


"아 괜찮아요. 샴푸 안 해도 돼요."

"오늘 머리 감으셨어요?"

"아뇨 어제...."

"그럼 감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머리가 뜰 수도 있어서요."


아, 왜 난 오늘 머리를 감지 않고 왔을까. 스스로를 구박했다. 호야 등원 때문에 정신없었다곤 해도 조금만 신경 쓰면 감고 올 수 있었는데. 긴 데다 워낙 숱도 많은 머리카락을 직원분이 감겨주는 동안 미안함에 두 손을 모았다.


"머리가 많이 기시네요."


샴푸를 마치고 안내해준 자리에 앉으니 이번엔 미용사가 다가와 말했다.


"아 제가 임신한 후에 미용실을 처음 왔거든요. 좀 오래돼서요."


난 기다렸다는 듯이 변명 투의 대답을 빠르게 뱉어냈다.


"언제 출산하셨는데요?"

"재작년 12월이요."

"... 그럼 정말 오랜만에 오시긴 했네요. 보통 아기가 돌쯤이면 오시거든요."


돌이 지난 지도 반년이 되었으니 내가 너무 방치하긴 했나. 뭐든지 신경 안 쓰고 살 땐 속 편하고 좋은데 한번 신경 쓰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것 같다.


"저도 아기 생긴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재작년 10월에 태어났어요."


아닛. 뭐라고?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다가 훅 들어온 미용사의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 미용사는 아줌마는 아니고 아저씨였지만 상관없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기를 키우고 있다는 것만으로 난 동성친구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미용사의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숨  틈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주말엔 뭘 하며 지내는지, 18개월 무렵에는 얼마나 말을 안 듣는지, 활동량이 많아서 감당이 안 된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시덕거렸다. 미용사의 표정과 말투도 손님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아는 사람에게 육아의 일상을 털어놓듯 허물없는 모습이었다.


사십 년 가까이 내게 미용실은 "이렇게 이렇게 잘라주세요." 한 다음에 입 한 번 열지 않다가 마지막에 "감사합니다." 하고 나오는 곳이었다. 직원이 내게 말을 거는 것도 싫었고 뭘 물어보는 것도 싫었다. 그랬는데 그날은 대화가 끝나는 게 아쉬울 지경이었다. 몇 시간이고 더 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용실을 나올 땐 마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를 두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그곳이 마음속 단골로 자리 잡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줌마는 내게 오지 않을 먼 미래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되니 자연스럽게 아줌마가 다. 말이 많아지고 뻔뻔해졌다. 아줌마가 됐다는 사실에 딱히 거부감이 들지도 않는다. 삶의 도도한 주인공으로만 살다가 하나 더 부여된 수행원이라는 역할이 낯설어서 그저 재밌다. 아직은 엄마라는 옷이 몸에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작은 변화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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