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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Nov 10. 2021

9000원짜리 딸기

생후 22개월 때의 기록


호야를 하원시켜서 집에 들어오는 길. 오늘도 호야는 문 앞에 놓인 유모차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이거, 이거, 호야 차~"

팔을 쭉 뻗어 유모차를 가리키며 몸을 들썩거린다. 유모차 산책을 가고 싶다는 뜻이다.


집에 들어가 귀까지 덮이는 모자를 꺼내 호야에게 씌워준 뒤 유모차에 태워 다시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 쌩쌩 부는 바람 때문에 옷에 금세 추위가 스며들었다. 접혀있던 호야의 옷소매를 길게 펴주고 양말은 바지 위로 덮어 완전무장을 해줬다. 마스크 위로 눈만 빼꼼 내놓은 호야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열심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호야는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밖으로 나가면 그걸로 만족하기 때문에 유모차를 달달달 끌면서 어디로 갈지 잠시 고민을 했다. 평상시 자주 갔던 축구장 옆 놀이터는 오늘 선택지에서 제외됐다. 날씨가 추워 동네만 후딱 돌고 빨리 들어갈 심산이었다. 잠시 걷는 사이 따뜻하고 달달한 커피가 당겨서 컴포즈 커피에서 돌체라떼를 한 잔 샀다. 그리고 식당들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마라탕도  그릇 샀다. 그러는 동안 20여 분이 지났다.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어져 유모차를 집 쪽으로 몰면서 호야에게

"호야야 안 추워? 이제 들어갈까?"

하고 물으니

"아니~"

다.


요새 호야는 말이 부쩍 늘고 있. 예전에는 호야에게 혼잣말처럼 질문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뭘 물어보면 "", "조아", "아니"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내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없이 집에 들어가려던 계획을 변경해 동네 마트로 들어갔다. 이것저것 필요한 걸 주워 들고서  마지막으로 과일이 있는 쪽으로 갔다. 호야가 좋아하는 청포도를 사려는데 예전보다 가격이 올라 한 팩에 8000원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딸기가 가격이 조금 내려 한 팩에 9000원이다. 한 팩에 9000원짜리 딸기는 예전 같으면 비싸서 사지 않았을 텐데, 호야가 좋아하는 과일이다 보니 고민이 됐다. 맛있게 먹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내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면, 엄마의 뇌에서는 중독을 일으키는 중추가 반응한다고 한다. 즉 마약 중독자가 금단 상태에서 마약을 보았을 때 반응하는 뇌의 부분이, '내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본 엄마의 뇌에서도 동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웃는 모습뿐 아니라 먹는 모습에서도 그 중추라는 게 반응하지 않나 싶다. 두 모습 다 보면 기분 좋고, 자꾸 또 보고싶어지니까. 그래서 그 비싼 블루베리도 호야는 넉넉하게 먹었었고, 샤인머스캣도 호야 때문에 샀었다. 하긴 웃는 모습, 먹는 모습 뿐이겠는가. 부드러운 살을 만질 때랑 달콤한 살냄새를 맡을 때는 또 어떻고...


나는 결국 9000원짜리 딸기를 들고 계산대로 갔다. 호야가 맛있게 먹을 모습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지금의 행복이 너무 커서, 호야가 독립해서 떠나간 후의 미래의 나에게 벌써부터 위로를 해주고 싶을 정도다.


욤뇸욤뇸
꺄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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