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 호야 픽업을 남편과 번갈아가며 하고 있다. 집에 차가 한 대 있기 때문에(정확히는 시부모님께 빌린 차) 그날 호야 픽업을 담당하는 사람이 차를 갖고 출퇴근을 한다.
내가 호야 픽업을 담당하지 않아서 차가 없는 날은, 일터에서 집까지 오는 데한 시간 정도 걸린다. 30분을 걸은 뒤 지하철로 두 정거장을 이동하고, 10분을 더 걷는다. 그 시간에는 호야에게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종종걸음 치는 마음과 퇴근길의 호젓한 여유가 겹친다. 마음은 바쁘지만 저녁 바람은 느긋하다. 처음엔 지하철역까지 버스를 타고 갔지만 요즘엔 걸어 다닌다. 버스를 기다리고, 퇴근시간에 정체된 찻길 위에 서 있다 보면, 걷는 시간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걸리는 시간이 비슷하다면 당연히 걷는 쪽이 좋다.
오늘은 지하철을 탔는데 서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 몇 칸을 걸어서이동했다. 그러는 동안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든 서 있는 사람이든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핸드폰을 보고 있는 모습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물론 나도 걷지 않았다면 핸드폰을 보고 있었겠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있으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동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한결같이, 비슷한 각도로 핸드폰을 들고 그것을 초점 없는 눈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을 막상 마주했을 땐 어쩐지 오싹하기까지 했다. 작은 핸드폰 안에는 우주가 들어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주 공간을 목적 없이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몇 칸을 이동한 덕분에, 나는 그 순간 그 표류의 물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로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읽거나 쓰는 것. 그것을 통해 사유하는 것. 보잘것없게 느껴지더라도 '나만의 생각'을 하는 것. 그래야 휩쓸리지 않고 멈춰 설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한 게 무엇이냐면, 결국 '핸드폰으로' 브런치에 접속해 글을 두 줄 썼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나 역시 '표류하는 별' 중 하나였을 거다. 그리고 아까 내가 놓친 '사유하는 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지하철 한 칸에는 '사유하는 별'이 몇 개나 될까. 오늘은 또 쓸데없이 이런 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