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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Feb 03. 2022

미라클 모닝의 시작


“아… 또 일주일이 갔네.”

내가 금요일마다 중얼거리는 말이다. 금요일이 되면, 이제 주말이라는 기쁨보다 일주일이 또 쏜살같이 지나갔다는 자각이 먼저 밀려온다. 아침에 정신없이 출근해서 저녁에 기진맥진 아기와 잠드는 하루가 반복되는 사이 정신을 차려보면 월화수목은 온데간데없고 금요일만 남는 것이다. 주말에는 몇 시간 정도 남편과 번갈아가면서 아기를 보는 덕분에 얼마간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역시 초콜릿이 입 안에서 녹는 속도보다 빠르게 지나간다. 달콤한 시간을 음미할 새도 없이 바짝 붙어 따라온 월요일에 뒷덜미를 잡히고 만다.


복직 이후에는 삶이 마치 거센 물살에 맥을 못 추고 휩쓸려가 기분이다. 일과 육아는 서로의 빈틈을 허용하지 않고 24시간을 온전히 채우기에 충분했다. 그 가운데에서 나는 가라앉지 않을 만큼만 어중간하게 떠있다. '나'를 놓치지 않아 보겠다고 자투리 시간에 글쓰기나 독서, 운동을 시도해보지만 그마저도 그 일에만 집중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기가 뽀로로를 보는 동안 급하게 키보드를 두들기거나, 출퇴근길 차 안에서 오디오북을 듣거나, 퇴근할 때 집으로 뛰어가면서 운동 시간을 채운다.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다.

 

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이렇게 지나가겠지. 분명 달리고 있는데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다. 일상에 더는 새로울 게 없는 것 같아 활기를 잃어갔다. 아기는 보고만 있어도 행복감을 주는 존재이지만 혼자 있을 때 느껴지는 허탈감까지 막을 순 없었다.

'욕심이 많아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건 아닐까.'

내 능력보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만족을 못하는 게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쓰기, 독서, 운동 중 포기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해야 이 인생의 권태로움을, 무기력감을 이겨낼  있을까. 아기가 잠든 시간, 책상 앞에 멀뚱히 앉아 있다가 문득 새로운 일을, 그동안 미루고 있던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겨우 생각해낸 탈출구였다.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다른 일을 벌이겠다고?'

실소가 새어 나왔지만 머릿속 목소리와는 반대로 심장이 기다렸다는 듯 두근댔다. 내가 모르는 세계로 빨리 여행을 데리고 가 달라채근하듯이.


스페인어, 세계사 등 그동안 해보고 싶던 공부를 하나씩 떠올리다, 6년 전부터 버킷리스트에 적어만 놓았던 청소년 상담사 3급 시험을 준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심을 하자마자 속전속결로 인강 신청까지 마쳤다. 수강료는 무려 50만 원. 1월에 새로 받은 복지포인트로 결제하긴 했지만 1년 치 복지포인트의 절반에 해당하는 큰돈을 수강료로 지불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금을 투자해버렸으니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긴 했지만, 새로 시작한 공부는 마치 닫힌 방의 창문을 연 듯 일상의 눅눅한 공기를 환기시켜주었다. 집단상담이나 심리측정, 상담이론 등 앞으로 배울 내용을 OT 강의로 듣는데 두근두근 또 가슴이 뛰었다.


'공부를 하루 중 언제 해야 되지?'

수강료 결제까지 마치고 나서야 현실적인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과 같은 생활방식으로는 도저히 공부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새벽 시간을 이용해야겠다!'

희망사항으로만 간직하고 내내 실천하지 못했던 미라클 모닝이 이렇게 시작됐다. 이전에도 새벽시간을 활용한 적은 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운 좋게 일찍 일어난 날이었을 뿐 새벽에 꾸준히 일어나 보자고 다짐한 건 처음이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순간(50만 원을 결제한 순간)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이 가능해졌다.


미라클 모닝 3주째. 미라클 모닝도 참 나답게 불완전해서 '매일 4시 반 기상'하는 이상적인 미라클 모닝은 아니다(알람은 분명 4시 반인데...). 어떤 날은 6시 반에 겨우 일어나 놓고 미라클 모닝을 했답시고 뻔뻔하게 우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새벽에 깬 아기를 달래느라 잠이 부족해 미라클 모닝은 꿈도 못 꾼 날도 있다. 그렇게 삐그덕거리며 21일 중 15일 동안 새벽 시간을 가졌고, 공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오고 있다.


새로운 목표와 함께 미라클 모닝을 시작하니 마음속 먹구름이 싹 걷힌 듯하...면 좋겠지만, 권태로운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다만 '조금이라도 발전하고 있다'는 작은 뿌듯함이 생겼을 뿐이다. 지금은 겨우 느껴질 만큼 작지만 언젠가는 이 뿌듯함이 더 커질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러기를 바라며 추운 겨울을 조심스럽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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