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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Jan 07. 2022

겨울은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특별할 것 없고 비슷비슷해 보이는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출근 준비와 아기 등원 준비를 한다. 새벽에 일어나 자기계발을 하는 미라클 모닝을 꿈꾸지만 늘 마음뿐이고, 보통 집에서 출발하기 30분 전에 나의 의지력을 시험당하며 겨우겨우 일어난다. 아기를 등원 시키고 출근하면 9시 10분 전이다. 오늘도 이 엄청난 일(=출근)을 해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 후에는 시간이 쏜살 같이 지나간다. 민원인과 공문이 쉴 새 없이 밀려온다. 전투력을 끌어올려보지만 신청만 받아놓고 접수하지 못한 서류가 미처 막아내지 못한 적군처럼 책상 한쪽에 쌓여간다. 점심시간에 반짝 정신이 돌아왔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보면 퇴근 시간이다. 일은 쌓여있지만 아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급하게 처리할 일이 없는 이상 퇴근 시간은 칼같이 지킨다.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내가 해줄 거라 믿으면서.


회사에서 퇴근하면 바로 다시 육아 출근이다. 처음에는 아기가 칭얼거리고 저지레를 해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지만 저녁 9시가 지나면 슬슬 아기가 잠들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하다고…!’ 속으로 외치지만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호야는 신나게 재잘거리고 노래 부르며 밤을 불태운다.


내가 깜빡깜빡 잠들기 시작하면 그제야 호야도 잠이 든다. 그러면 나는 꿈의 세계에 발을 반쯤 걸치고 나도 이대로 잘지 아니면 방 밖으로 나갈갈등을 시작한. 갈등을 하기도 전에 곯아떨어지는 날도 있지만 웬만하면 내 시간을 갖고 잠드는 편이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붙잡아두지 않으면 하루가 휩쓸려 사라질 것 같아 무섭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봤을 때 내 삶의 한 부분이 뭉텅이째 증발해 있을까봐.


쳇바퀴 돌듯 비슷한 하루가 계속되어서인지, 가을 끄트머리에 찾아왔던 우울감이 아직도 비슷한 강도로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1~2주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우울감이라는 녀석이 머리카락 끝에 매달려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해가 짧아지고 추위에 몸이 움츠러드는 탓인가, 몸이 금방 지치듯이 덩달아 마음도 그렇다.


우울감을 눈치챈 사람은 없다. 밖으로 드러날 정도는 아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밝은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다. 오늘은 팀장님께 '해맑다'는 말까지 들었다. 지금 내 우울감은 얕은 물웅덩이에 가라앉은 조약돌이랑 비슷하다. 바쁘고 정신없을 땐 출렁이는 물결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수면이 잔잔해지면 그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우울감의 이유는 여러 가지 짚이는 게 있지만 깊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그 이유들을 헤집어봤자 먼지만 더 풀풀 날릴 테니까. 스스로 조약돌을 물웅덩이에 퐁당퐁당 던져 넣는 꼴이다. 그냥 모른 척 덮어두는 게 낫다. 하지만 우울감의 가장 큰 이유는 분명하다. 복직 후에 확연하게 줄어든 내 시간 때문이다.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내 마음 앞에 무력감을 느끼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이번 겨울은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금방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뭔가가 내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그저 버티는 게 최선이니까. 사실 진짜 힘든 순간은 버티는 것조차 버거울 때인데 지금은 버티는 정도는 거뜬한 수준이니 별 일도 아니다. 


버티다 보면 언젠간 변화가 올 것이다. 상황의 변화든 마음의 변화든. 기울었던 달은 다시 차오르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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