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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Jan 02. 2022

엄마 어디 갔(었)어

생후 24개월 때의 기록


기온이 영하를 맴도는 날씨가 며칠간 지속될 무렵,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핸드폰 화면에 ‘ㅇㅇ반’이라고 호야 반 이름이 뜬 것을 본 순간 무슨 일인가 싶어 심장부터 덜컥 내려앉았다.


“어머니, 오늘 호야 1시에 하원해 주시는 날이죠?”


사실 그날은 어린이집 선생님의 백신 3차 접종 날이라 평소보다 일찍 호야를 하원시켜야 했기에 친정부모님이 호야를 1시에 하원해주시고 내가 육아시간을 써서 4시에 본가로 호야를 데리러 가기로 계획된 날이었다.  


“네 저희 부모님이 1시에 가실 거예요.”


설마 확인 전화를 하실 리는 없는데….


“근데 지금 호야가 열이 나서요. 37.5도까지 올랐어요.”


아 역시나... 아침에 기침을 좀 하긴 했지만 열까지 날 줄은 몰랐다. 등원할 때 울어서 왜 그런가 했는데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랬나 싶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부모님께 조금 더 일찍 가실 수 있는지 말씀드려 볼게요.”


선생님과 통화를 마치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니 막 나갈 채비를 하던 참이라 하셨다. 저번 열감기가 나은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또 열이 나다니, 남은 밥을 마저 먹는데 묵직한 돌 무게만큼의 걱정이 가슴에 얹혔다. 연가를 쓸 수 있는 날이 언제인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나와 남편과 양가 부모님의 시간을 퍼즐처럼 맞춰 호야의 하루를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동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연가를 쓰는 게 관건인데 마땅히 쓸 만한 날이 없었다.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화요일은 이미 연가를 쓰는 사람이 있었다. 목요일은 내가 한 달 전부터 대학병원에 예약을 해놓은 날이라 그 앞뒤로는 이틀 연속 자리를 비우기가 눈치가 보였다. 그전에 아기가 낫기만을 바랐다.


다음날은 시부모님이 하루 종일 호야를 봐주셨다. 나는 일하는 내내 아픈 호야의 작은 모습이 명치에 걸린 듯했다. 정신이 온통 아기에게 쏠려 있으니 엉뚱한 실수를 연발하기도 했다. 기초연금을 신청하러 온 어르신  한 분과 상담을 하는데, 소득 재산을 계산해보니 소득인정액이 기준을 초과한 분이었다. 그것을 설명드리자 어르신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했다. 나는 재산이 많은 분들의 흔한 ‘난 내 재산을 몰라’ 액션인 줄 알고 그분의 소득과 재산을 하나씩 짚어나가며 설명을 드렸다. 하지만 드러난 건 그분의 많은 재산이 아니라 나의 실수였다.


“어르신, 자가 말고 주택이 하나 더 있다고 하셨는데 그 주택의 공시지가를 검색해보니까 5억 원이 넘어서요.”


“뭐? 5억이 넘는다고?”


그분은 내 말을 듣더니 펄쩍 뛰었다.

이상해서 공시지가를 다시 확인해 보니 5억이 아니라 5천만 원이 아닌가. 내 눈이 어떻게 됐나? 서둘러 기초연금 신청서를 뽑아드렸다. 죄송해서 진땀이 나고 스스로가 한심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일 말고도 한 번은 민원인의 신분증을 복사해 놓고 그 사본을 신분증이랑 같이 돌려드릴 뻔한 일도 있다. 큰 실수가 없었던 게 다행일 지경이다.


꾸역꾸역 근무시간을 채우고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몇 분 안 있어 남편과 호야가 도착할 시간이라 주차장에서 목을 쭉 빼고 호야를 기다렸다. 호야는 고개가 옆으로 푹 꺾인 채 카시트에 앉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낮잠을 안 자고 방금 전에 잠들었다고 했다.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집으로 종종걸음 쳤다.


집에 들어와 겉옷을 벗기려는데 호야가 잠결에 벗기지 말라고 칭얼거렸다. 할 수 없이 안은 채로 거실에 앉았다. 엉덩이를 토닥이는데 아기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맡으니 오히려 내가 안심이 됐다. 한동안 품에 안겨 잠에 취해있던 호야는 어느 순간 고개를 들고 나를 보더니 그제야 엄마인 줄 알았는지 "엄마네"하며 보조개가 쏙 들어가게 웃었다.


"엄마 어디 갔(었)어."


열 때문에 뜨끈해진 얼굴을 가슴팍에 묻으며 호야가 말했다.


"어디 가긴, 계속 호야 옆에 있었지."


대답하는데 갑자기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그랬구나. 이 작은 것이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아기를 키운다는 건 이런 걸까. 이렇게 작은 일에도 마음이 무너져버린다. 다다음날 병원에 가는 개인적인 일로 연가가 잡혀 있었지만, 팀장님과 동료들에게 연락해 내일 연가를 써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기가 아플 때 마음 편히 연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장 해야 될 급한 일은 없었지만 민원대를 비우는 건 늘 마음이 편치 않다. 게다가 갑자기 자리를 비우게 됐으니 더욱 그랬다. 한편으론 왜 진작 아기 옆에 있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봤나 하는 자책도 들었다. 일과 육아는 물과 기름처럼 좀체 섞이기 힘들다.


어느 책에서 "아이가 아플 때 는 엄마의 죄책감은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강화시키고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죄책감은 아기에게 엄마가 필요한 순간을 알려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기가 아프다고 반사적으로 죄책감이 들지는 않지만 죄책감이 드는 순간이 분명 있다. 예를 들면 방금 전 호야의 말을 들었을 때 같은 경우다. 내게는 "엄마 나를 지켜주세요"라는 말로 들렸다. 이번에는 아기 옆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으니 다행이다. 다음은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어 마치 줄타기를 하는 듯 아슬아슬한 기분이지만, 나중 일은 그때 가서 걱정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부모님 집에서 잠든 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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