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에 신륵사로 단풍 구경을 다녀왔다. 햇살이 좋고 따뜻해서 겉옷이 필요 없는 날씨였다. 오전 11시. 호야를 카시트에 앉히고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호야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한참 같이 수다를 떨던 남편도 2시간쯤 지나자 잠이 들었고 나는 팟빵 매거진을 들으면서 남은 길을 마저 달렸다. 가족들이 곤히 잠든 차를 몰고 낯선 곳으로 가는 시간이 좋다.
2시간 반을 달려 신륵사에 도착했다. 성인 1명당 입장료가 3000원, 7세 미만은 무료였다. 보통은 36개월 미만이 무료가 많은데 이럴 때면 어릴 때 더 부지런히 놀러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좋은 건 주차료가 없다는 것.
신륵사는 생각보다 작은 절이었다. 660년 된 은행나무와 분위기 좋은 작은 찻집이 빼꼼 고개를 내밀뿐 “우와” 탄성이 나올 만큼 단풍이 아름다운 곳은 아니었다. 얼추 한 바퀴 도는 데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대를 많이 한 탓인지 약간의 허탈감마저 들었다. 우리는 김밥과 유부초밥을 먹기 위해 일단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곳에서 2시간이나 놀다가 나올 줄은…
아마 남편과 둘이 놀러 갔다면 김밥만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다 봤네. 더 볼 게 없다” 하면서. 하지만 호야는 아무것도 없는(없다고 생각한) 그곳에서 참 열심히 놀고 많이 웃었다. 절에 있는 검은색 토끼를 쫓아 뛰기도 하고, 길이 아닌 곳으로 걷기도 하면서 쉬지 않고 절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모래를 양 손에 쥐고 빗물 빠지는 하수구에 던지는 데 재미를 느껴 한참을 반복하며 꺄르륵 웃기도 했다. 뭐가 재밌는지는 모르겠지만 호야가 즐거워하니 남편과 나도 곁에 함께 있었다. 내가 그곳의 하수구를 그렇게 들여다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이랑 하는 여행은 항상 예측할 수 없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다. 평소라면 다니지 않았을 길을 걸으면서, 다른 시각(아기가 보는 시선)에서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으니 즐겁다.
신륵사를 나오는데 옆쪽에 작은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우와”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단풍은 그곳에 있었다. 이번에는 남편과 내가 신나서 방방 뛰어다녔다. 예쁜 가을을, 사진과 마음에 담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