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26개월 때의 기록
“안~아 줄 거야. 안~아 줄 거야.”
호야는 뭔가가 먹고 싶으면 냉장고 앞에서 나를 향해 팔을 쭉 뻗고 발을 동동 구르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왜 "안아줘"라고 요청하지 않고 "안아 줄 거야"라고 표현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엄마가 나를 안아 줘야겠다고 다짐할 거야”라는 뜻일까…? 내 다짐은 내가 정할 거라고…). 호야의 명령(?)에 따라 호야를 안은 채 냉장고 문을 열어주면 한참 동안(가끔은 냉장고에서 문 닫으라고 삑삑 소리가 날 때까지) 신중하게 탐색한다.
“어디 먹을 거 없나~?”
하면서.
남편은 출근을 하고 나는 집에서 가정보육을 맡았던 어느 휴일 아침도 그랬다. 나에게 안아달라고 하더니 냉장고 안을 쭉 훑었다. 호야의 시선과 함께 나도 뭐 줄 게 없는지 살펴봤는데 이럴 수가… 그날따라 호야가 먹을 거라고는 달랑 바나나우유뿐이었다.
“호야야~ 바나나우유밖에 없는데?”
나는 미안한 얼굴로 말했고, 호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텅 빈 냉장고 이쪽저쪽을 말없이 둘러봤다.
한동안 장을 못 봤더니 결국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호야가 바나나 우유를 빨대로 쪽쪽 빨며 먹는 소리에, 괜스레 더 미안해졌다.
“블루베리 먹고 싶어~”
“블루베리? 우리 블루베리 사러 갈까?”
블루베리를 찾는 호야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동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금방 외출할 채비를 했다.
'유모차를 타야 되나?'
막 나가려는 참에 고민이 시작됐다. 유모차를 탈까? 차를 탈까? 겨울에는 날씨가 춥다 보니 유모차를 타지 않은 지 몇 달이 됐다.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차를 타고 좀 더 큰 마트로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면 걸어서 가볼까? 마트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 남편 없이 둘이 걸어서 하는 외출은 처음이지만 그 정도는 가볼 수 있을 듯했다.
돌이 되기 전 어느 날엔가 유모차가 지겨워진 적이 있다. 유모차를 미는 게 힘들고 거추장스러웠다. 그때부터 호야랑 손잡고 외출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걸을 수 있게 되면 당장이라도 유모차 없이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호야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걷고, 걷는 속도가 빨라지고, 손을 잡고 걷기에 무리 없을 만큼 키가 크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더구나 같은 방향으로 걷기보다 자기가 가고 싶은 쪽으로만 가니 남편이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고민 끝에 호야랑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손잡고 나란히 걸으며 외출하기. 그렇게 기다리던 순간이 이제야 온 것이다. 패딩 안에 있는 작고 보드라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호야 덕분에 느리게 걸으면서,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는 듯했다. 다리가 아픈지 몇 번 안아달라고 하긴 했지만 '걸어서 마트 다녀오기' 첫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블루베리를 포함해서 백팩이 터질 만큼 장을 봐서 집에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호야랑 집 앞 마트에 가는 즐거움이 생겼다. 마트에 가기 전에 바로 옆에 있는 도서관까지 들르면 더 완벽한 루트가 된다. 철부지 엄마는 고작 5분 거리 마트에 다녀오면서, 언젠가 호야랑 함께 산티아고 길에 가는 상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