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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Nov 11. 2021

나도 아프다고~


어제 오후에 공가를 내고 코로나 백신 2차를 맞았다. 아무리 악명 높은 화이자 2차 백신이라고 해도, 이제껏 주사를 맞고 딱히 아파본 적이 없기 때문에(1차 접종 때도 주사 맞은 곳만 아팠다)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걱정은커녕 부랴부랴 집에 돌아와 달리기를 하고(그렇다, 무려 달리기를 했다), 호야 픽업을 갔다.


저녁부터 몸살기가 느껴졌다. 호야는 그날따라 유독 엄마인 나만 찾았다.

"엄마 일어나요~"

"엄마 이것 봐요~"

(집에서 존댓말을 가르친 적이 없는데 어디선가 존댓말 배워왔다. 끝에 "요"를 붙이는 게 너무 귀엽다)

시간은 밤 10시가 지나고 있었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나는 순간적으로 호야에게 짜증을 낼 뻔했다. 나를 좀 내버려 두라고! 하지만 그럴 순 없으니 옆에 있는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나 아프니까 호야 좀 봐줘."

그런데 남편 대답이 걸작이었다.

"호야가 널 찾는 걸 어떡하냐."

아니 근데 이 사람이... 남의 속 뒤집기 대회가 있다면 우승은 무조건 내 남편이 떼놓은 당상이다. 결국 짜증의 화살은 남편에게 쏟아졌다. 남편은 내가 아프다는 걸 믿지 않았다.


갑자기 그동안 서러웠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장 서러웠던 건 뭐니 뭐니 해도 호야를 출산했을 때다. 낮 12시 반쯤에 자연분만을 한 이후 마취가 풀리면서 온몸이 아팠는데, 특히 회음부가 끔찍하게 아팠다. 그 와중에도 밥을 먹고, 볼일을 보고, 수유를 가고, 좌욕을 하는 등, 당시에는 모두 엄청난 과제로 느껴지는 일들을 연거푸 해야 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있는데 몸살기가 심해서 남편에게 다리를 좀 주물러 달라고 하자, 남편이 말했다.

"야, 너만 아프냐?"

그건 걸작을 넘어 내 마음에 영원히 박제될 수작 같은 대답이었다. 그때 남편은 어깨에 담이 와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건 알지만... 나는 무려 출산을 했다고... 아니면 말이라도 좀 예쁘게 해 주면 안 되냐? 나는 아파서 돌아눕지도 못한 채 그대로 펑펑 울었다.


부부싸움을 한 다음날 열이 펄펄 났을 때도, 내심 "괜찮냐"는 말을 기대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은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이게 다 내가 워낙 건강한 탓이다. 어릴 때부터 병치레와는 담을 쌓았고, 간간이 찾아오는 나의 아픔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내가 감기에 걸리면 엄마는 "동생들한테 옮겠네"라고 했다. 여동생은 나보고 돌도 씹어먹을 것 같다고 했었다. 엄마와 여동생은 평상시에 아플 때가 많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가 걱정거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내 몸 내가 돌보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번 서러운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 이런 일들이 주르륵 떠올랐다(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아플 때 내가 잘 돌본 것도 아니라서 할 말은 없다).


오늘 아침 눈을 떴는데 두통과 열감이 있었고, 뒷목부터 어깨, 등까지 두드려 맞은 듯 아팠다. 갑자기 중력의 힘이 두 배는 세진 듯 꼼짝할 수 없었다.

"야 움직이지 마. 너 지금 쉬어야 돼."

몸이 말을 거는 게 느껴졌다(그렇다. 남편이 한 말이 아니라 내 몸이 한 말이다). 오늘은 남편이 호야 등원 담당이라, 어린이집에 들렀다가 출근해야 하는 남편은 일찌감치 출근 준비를 하고, 나는 호야 등원 준비를 했다.

"나 아파."

출근 준비를 마친 남편에게 말하자,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응? 네가?"

하고 말하며 씩 웃었다. 고개까지 갸우뚱하면서...


갑자기 뽀로로 만화의 포비가 떠오른다. 포비는 뽀로로 캐릭터 중에서 몸집이 제일 큰 북극곰인데, 성격이 순하고 착하다. 항상 친구들에게 양보만 하는 포비가 하루는 속상한 마음을 풀기 위해 밤에 혼자 산속에 들어가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그네 타고 싶어~ 샌드위치 먹고 싶어~"

물론 나는 착하지도 않고 양보를 잘하지도 않지만, 답답한 마음은 그때 포비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도 산속에 들어가 소리치고 싶다.

"나도 아파~ 나도 아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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