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어느 날은 남편과 만난 지 500일이 되는 날이었다.기념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우리지만 그래도 500일은 어딘지 특별해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아기 재우고 난 다음에 저녁이라도 먹으러 갈까?"
며칠 전부터 그날을 어떻게 보낼지 남편과 고민했지만, 결국 이렇다 할 계획 없이 기념일 당일이 됐다. 아기가 아직 5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라 우리만의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웠다. 아기가 언제 잘지 알 수 없었고, 자다가 깰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하필 그날, 동네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문자까지 왔다. 아기랑 산책도 못 나가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는데, 남편이랑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것도 썩 내키지가 않았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하루가 흘러 오후 5시 반이 됐다. 모유수유를 하는데 아기 눈이 스르르 감기기 시작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아기를 살살 눕혔다.
"끄응.. 끙.. 으! 으! 응애~"
보기 좋게 실패. 요새 한창 묵직해진 아기를 끙차 다시 들어 올렸다.
졸려하지 않으면 재우지도 않을 텐데, 잘 듯 말 듯 하니 헛고생이 따로 없다. 잠든 것 같아서 눕히면 울고, 안으면 졸고, 다시 눕히면 울고의 반복. 결국 퇴근해서 7시 반에 집에 도착한 남편이 아기를 재웠다. 나는 옆에서 산적 같은 머리를 한 채 대자로 뻗어있고.
우리는 저녁으로 냉동만두를 꺼내서 쪄 먹은 후에 하릴없이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뭔가 허탈했지만 이미 시간은 밤 10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빙수 먹으러 갈까?"
아기 건강검진을 언제 갈지 얘기하던 중에 누군가 제안했는데 그게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마 남편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후줄근한 차림으로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심지어 나는 생얼이었다. 화장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서른 이후부터는 예의상 기초화장은 하고 밖에 나갔었는데, 아기를 낳은 후로 참 많이 무례해졌다.
아기가 깨면 전화해달라고 동생에게 부탁하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 공기가 상쾌했다. 낮에는 더운데 밤에는 산책하기 좋은 날씨다. 우리는 집 앞에 있는 카페로 가서, 창가 쪽에 앉았다. 동네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지만 카페에는 우리를 포함해 사람이 제법 있었다.
"저녁에 이렇게 나오는 거 오랜만이다."
"그러게, 신혼 느낌 나네."
남편 말에 아련하게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
"창밖만 봐도 좋다."
재료를 그냥 때려 박은 것 같은 못생긴 빙수를 남편이랑 단숨에 비웠다. 달고나 빙수인가 그랬는데 덩어리째 들어있는 달고나와 더위사냥 같은 맛에 둘이서 뭐가 좋은지 한참을 낄낄거렸다.
그러다 빙수 때문인지, 아니면 에어컨 바람 때문인지 추워진 우리는 빙수만 먹고서 15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동네를 걸었다. 잠깐만 걸어야지 했는데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 30분이 훌쩍 지났다. 이렇게 사소한 얘기에 수다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람이랑 결혼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맞다, 감자 사야 되는데."
이유식 재료를 안 산 게 생각나서 그대로 슬리퍼를 끌고 근처 마트로 갔다.
3000원어치 감자를 들고 계산대로 갔는데, 아기 기저귀를 버리던 10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떨어진 게 생각나서 그것도 한 묶음 달라고 했다. 계산하려는 순간 남편이 3분 카레도 두 개 들고 온다.
"내일 저녁에 먹자."
나는 "그래" 하고 대답했고 내일 저녁에 카레를 먹을 생각에, 내일 저녁에도 오늘 같은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마트를 나오는데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알려주듯이 빗방울이 드문드문 떨어졌다. 종일의 육아, 잠깐의 빙수와 산책. 평범하지만 그래서 행복한 500일이 그렇게 흘러갔다. 아마 우리는 이제 또 1000일쯤 돼야 '기념일인가 보다' 할 것 같다.
그동안 연애부터 임신, 결혼, 출산, 육아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연애 기간은 짧았고 신혼은 느낄 새도 없이 500일이 흘러갔다. 그래서인지 아직"여보"라는 호칭이 어색한부부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하루하루에 부족함이 없다(남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가끔 이렇게 저녁 바람을 같이 맞고, 빙수를 먹으며 수다를 떠는 하루가 언제까지고 쌓인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