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키우는 식물이 별로 없다. 식물 키우기를 좋아해 본 적이 딱히 없기도 하지만 식물을 놓을 만한 공간이 없다는 이유도 있다. 방 하나에 붙어 있는 베란다에는 세탁기와 건조기, 몇몇 잡동사니가 모든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아기 손이 닿는 곳에 화분을 둘 수도 없기 때문에 거실도 무리다. 아기가 화분을 쓰러트려서 흙이 바닥에 흩어지는 모습을, 겪지 않아도 눈앞에 선명히 그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집 식물은 모두 식탁 한쪽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뱅갈 고무나무와 행운목, 스투키 등 크기도 아담한 것들이다.
“저 스투키, 분갈이해줘야 되지 않아?”
몇 달 전부터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작은 화분에 키우던 스투키가 쑥쑥 자라, 화분이 터질 것 같은 모양새가 됐다. 귀차니즘으로 계속 미뤄왔는데 이제는 더 미룰 수 없을 것 같았다.
“분갈이할 화분도 사고 꽃구경도 할 겸, 예삐플라워 가볼까?”
예삐플라워는 용인 남사 화훼단지에 있는 규모가 큰 꽃집이다. 꽃집이라기보다 거대한 비닐하우스에 자리한 식물 시장에 가깝다. 다양한 빛깔과 모양새를 뽐내는 온갖 식물들 사이를 거닐며 초록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작년 봄 이후 오랜만에 그곳을 찾았다.
식물이 가득한 곳.
"우와 이것 좀 봐. 정말 특이하게 생겼다."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부터 세 식구 모두 식물 구경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곳의 장점은 식물들마다 이름이 붙어있고, 가격이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름이 궁금해서 검색할 일도 없고, 부르는 게 값일까 봐 불안할 일도 없다.
남편과 나는 스투키 분갈이를 할 화분 하나와 새로 키울 식물 하나를 고르기로 했는데 워낙 예쁘고 신기한 식물이 많다 보니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남편과 나는 식물 취향마저 달랐다. 나는 평범하게 예쁜 식물이 눈에 들어왔고, 남편은 (내 눈에는) 괴상하게 생긴 식물을 족족 집어 올리며 예쁘다고 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접점은 발견되지 않았고 이리저리 구경하는 사이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내 취향과 남편 취향...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그리고 남편의 통 큰 양보로 내 취향의 식물인 무늬은행목을 고를 수 있었다. 우리는 무늬은행목을 옮길 화분 하나를 들고 분갈이해주시는 분께 갔다. 그분은 능숙한 솜씨로 무늬은행목을 화분에 척척 옮겨주었고, 식린이인 남편과 나는 그분의 행동 하나하나에 “우와”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집에 있는 스투키 생각이 나서 그 아이의 분갈이는 어떻게 하는 건지 그분께 살짝 물어봤다(아… 이런 분갈이 초보 같으니라구ㅜㅜ). 마사토를 바닥에 깔고 흙을 채운 다음, 위에 마사토를 한번 더 깔면 된다고 그분이 친절히 알려줬다.
‘오 생각보다 어렵지 않군.’
우리는 그분이 알려준 것들을 챙겨서 무늬은행목과 함께 집에 돌아왔다. 드디어 작은 화분에 답답하게 갇혀 있는 스투키를 넓은 곳에 옮겨줄 생각에 신이 났다.
‘마사토를 바닥에 2cm 정도 깔고, 흙을 채우고… 스투키를 옮기고… 마지막에 다시 마사토를….’
방금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스투키를 하나하나 옮겨 심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시작한 분갈이는 30분도 안 돼서 끝났다. 그동안 귀찮다고 미뤄온 게 민망할 정도로. 전보다 넓은 새 보금자리를 얻은 스투키가 한껏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나중에 베란다가 있는 집에 이사 가면 식물을 좀 더 키워볼까?”
남편이 조금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일 년 전만 해도 식물이라곤 하나도 없었는데 이제는 4종의 식물이 함께 살고 있다. 새로운 식물이 늘어날수록 집이 한결 화사해지는 걸 보며, 나 역시 남편과 같은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마당 있는 집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식물도 잔뜩 키우고….’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다.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남편과 나에게 그것은 너무 큰 모험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