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by 햇살바람



중학생 때, 등굣길에 버스를 잘못 탄 적이 있다. 어쩌다가 그런 실수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력이 안 좋아서, 어린 시절 기억은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때가 중학생 때인 걸 아는 건 내가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정류장이 낯설었던 걸 보면 이사를 한 지 얼마 안 된 무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버스인가 저 버스인가 헷갈려하다가 확신이 없는 채로 버스 하나에 올라탔고 창가 쪽 빈자리에 앉았다. 곧 문이 닫히고 버스가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으로 생경한 풍경이 스쳤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만약 버스를 잘못 탔어도 한 바퀴를 돌아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하고 태평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사람들이 타고 내렸고, 낯선 동네 길이 나왔다. 건물은 점점 낮아지고, 날은 점점 밝아왔다. 뭔가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버스에서 내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니 버스에서 내린다고 해도 학교까지 갈 일이 막막했다.


버스 위에 달린 시계에 계속 눈이 갔다. 등교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설마 지각인가?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지만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시간은 착실히 흘러 결국엔 등교시간을 1분, 2분 넘어가고 있었다. 완벽한 지각이었다. 마치 큰일이 날 것처럼 머리털이 쭈뼛 서고 현기증이 났다. 등교시간이 지났는데 학교가 아닌 곳에 있다니.


하지만 십여 분이 더 흐르자 오히려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큰일이 나야 정상인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나칠 만큼 평화로웠다. 버스는 여전히 정류장에 멈춰 섰고, 차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나는 그 시간에 학교에 있는 게 당연한데, 다른 사람들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내가 있는 세계 밖에서도 시간이 흐른다는 걸 그날 알았다.


교복 입은 학생이 학교는 안 가고 혼자 버스에 앉아 있으니 몇몇 사람들이 힐끗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아무 방해 없이 종착역까지 갔다.


학교에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담임선생님이 한심하다는 듯 등짝을 마구 때리시던 기억만 난다.


짧은 기억이지만 지금도 가끔 그때가 생각난다. 그때를 떠올리면, 내가 있는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상기할 수 있다. 내가 다니는 길이, 수많은 길 중 하나일 뿐이란 걸 깨달을 수 있다. 그러면 답답하고 힘든 순간도 얼마간 견딜 만해진다. 이 길은 내가 선택한 것이고, 마음만 먹으면, 버스를 잘못 타는 정도의 사건만 있으면, 이 길에서 벗어나는 건 생각보다 쉽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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