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자: 세례를 받았지만 성당에 가지 않는 사람
나는 크리스천이다. 신앙심이 깊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때는 꽤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했다. 정확하게는 29살부터 33살까지. 성실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살짝 미쳐있었다. 본당에서는 율동부와 레지오, 성경모임 등을 했고, 교구에서는 율동팀과 젊은이 기도모임 등에서 활동을 했다. 그밖에 연수나 피정에 참가자나 봉사자로 참여한 횟수가 30여 차례 된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일하는 시간 외 대부분의 시간은 성당이나 교구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렇게 성당 활동에 푹 빠져 지냈다.
본당이든 교구든 청년부가 따로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비슷한 또래와 어울리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열심히 활동한 가장 큰 이유는 (나조차 의심스럽지만) 순수하게 예수님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다 수녀가 되는 게 아닌가 걱정도 했다. 기대가 아니라 걱정을 했으니 나 같은 사람은 이미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혼자 그렇게 걱정을 해댔다. 수녀는 35세 미만까지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35세가 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리고 35살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한 번은 청년회장 연수에서 한 청년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하루 종일 예수님 이야기를 해도 질리지 않는 사람이요.”
농담 같지만 진심이었다. 그 청년의 당황한 표정이 지금도 얼핏 기억이 난다. 버퍼링이 걸린 사람처럼 잠시 멍하게 있다가, 농담인가 갸우뚱하다가, 곧 나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사색이 되더니, 뒷걸음질 치듯 사라져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누군가 그렇게 빨리 내게서 줄행랑을 치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랬던 내가 결국엔 무교인 남편과 결혼을 했으니 인생은 참 아이러니다.)
다소 늦은 나이에 청년부 활동을 시작한 것도 열심히 했던 이유였다. 당시 청년부에는 20살부터 40살까지 있었고 명확한 나이 제한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직감했던 것 같다. 실제로 33살 무렵 사회복지사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복지직 공무원이 되려고 수험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활동을 정리하게 됐고,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청년부로 돌아갈 수 없는 나이가 됐다.
열심히 활동한 건 앞에서 말한 대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무렵이지만 그때 처음으로 성당에 간 건 아니다. 엄마가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태어난 다음 해에 아녜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고, 초등학생 때까지 나름 꾸준히 성당을 나갔다. 딱히 믿음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엄마가 가라고 하니까 가야 되나 보다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모태신앙으로 성당을 다닌 많은 아이들이 성당에 발길이 뜸해지는 초등학생 고학년 무렵, 나도 그 시기에 냉담의 길로 빠졌다. 그리고 스물아홉 살이 될 때까지 15년 동안 성당을 찾지 않았다.
스물아홉 살은 어두운 시기였다. 내 삶은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바닥에 나뒹구는, 언제 바스러질지 모르는 낙엽보다 형편없었다. 자주 술을,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셨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남도 사랑하지 못했다. 형벌처럼 누군가를 그리워할 뿐이었다. 인생에 목표가 없었고, 자기혐오는 극에 달했다. 더 이상 내려갈 수도 없고 내려가서도 안 되는 바닥에 있었다. 무기력이 심해져 일할 때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가만히 누워서 보냈다. 시간이 약이라니까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 그 언제는 대체 언제일까, 생각하면서. 멀쩡한 몸을 두고도 멀쩡하지 않은 정신 때문에 침대에 누운 채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저기서 뛰어내리면 편해질까?"
하루는 여동생 앞에서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힘들다는 말 대신 아픔을 토해내듯 한 말이었다. 내 말에 기절초풍할 줄 알았던 동생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콧방귀를 뀌었다. 동생은 내 목숨을 나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언니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데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냐고 했다.
그날은 엄마랑 여동생이랑 셋이 집에 있던 주말이었다. 갑자기 부산한 소리가 들려 동생 방에 가보니 동생이 옷장 앞에서 외출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 가냐고 물어보니 엄마랑 저녁 미사를 드리러 갈 거라고 했다. 둘이서 미사를 드리러 가는 건 늘 있는 일이었는데도 그날은 혼자 집에 있을 생각을 하니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나도 같이 가."
성당을 다시 찾은 이유는 이게 다였다. 신앙심을 갖고 싶었다던가 하느님에게 의지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집에 혼자 있기 싫어서였다. 혼자 있으면 마음이 더 어두워질 것 같았고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날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느꼈던 따뜻한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