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등대처럼 길을 비춰준 곳

by 햇살바람


자랑은 아니지만 책 한 권 분량은 너끈히 쓸 수 있을 만큼의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흑'역사'라서 다행이다. 돌이켜보면 내 삶이 완전히 어긋나지 않게 잡아준 두 공간이 있었다. 한 곳은 성당이고, 다른 한 곳은 도서관이다.


도서관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평범한 하루였다. 이십 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갈 무렵, 내 또래의 사람들은 취업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거나 이미 취업을 했을 나이. 하지만 나는 스펙도 없었고 ‘좋은 곳’에 취업을 해야겠다는 마음 자체가 없었다. 기타리스트라는 꿈을 접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는 시간에는 도서관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때는 도서관 자료실에서 책을 빌려서 열람실에 앉아 읽는 걸 좋아했다. 치열하게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책 몇 권이나 한가롭게 들추고 있다 보면 혼자 느긋한 것에 만족스러운 한편,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이 부럽기도 한, 그런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아무튼 밝고 조용해서 좋았다. 가끔씩 들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에 마음이 편해져서 잠도 곧잘 오곤 했다.


그날도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여름이라 습했고, 비가 왔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눈을 떴을 때의 풍경이다. 후드득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머리맡에 어질러진 책과 필기도구들, 채 마르지 않은 우산,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 엎드린 채 낮잠을 자다 일어났을 뿐인데,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완벽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내 인생의 흑역사가 끝난 건 아니지만, 그날의 일은 마치 삶의 등대처럼 기억 한구석에 자리했다. 아무리 어두운 곳에 있어도 빛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것처럼, 그곳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내가 조금은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많은 변화를 필요로 했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 같지 않고 여전히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다. 변해야 된다.”


그때 일기장에 쓴 내용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척 다른 것 같지만 갖고 있는 마음은 비슷한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아닌 나로 변하고 싶은 마음'


어쩌면 도서관은 스스로 변하고 싶은 사람들이, 망망대해에서 불빛을 좇아 모여드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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