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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Feb 25. 2022

뽀통령에게 배우는 말

생후 25개월 때의 기록


두 돌 쯤부터 호야의 말이 부쩍 늘고 있다. 백일 무렵에는 '엄마' 한 마디가 듣고 싶어서 아기 앞에서 '엄마'를 천 번은 넘게 말한 것 같은데, 요즘에는 내가 가르치지도 않은 말을 불쑥불쑥 할 만큼 언어를 습득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제 방에 가서 잘까?" 하고 물으면 "방에 가자." 라거나 "아직 아니야~ 더 놀구 싶어~" 하고 대답하는 식으로 간단한 대화가 이뤄지니 이제는 제법 의사소통이 되는 기분도 든다.


사람이 말을 한다는, 그 당연한 행위가 그렇게 경이로워 보일 수가 없다. 돌 무렵에 호야가 단어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할 때도 그랬다. 호야가 "맘마, 까까, 딸기" 등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표현하면 남편과 나는 그것을 꺼내 주며

"이제는 호야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전보다 훨씬 편하다."

하고 감동의 소회를 나누곤 했다.


"은호 마스크 어딨지?"

언제까지나 단어만 말할 것 같던 호야가 세 단어 이상의 문장을 처음 말한 건 두 돌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그때의 감격이란! 자동차도 아니고 인형도 아닌 마스크를 찾는 말이라는 게 지금 생각하면 짠하지만… 그날 이후로 말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자신이 말을 할 수 있다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듯하다.


아기는 24개월부터 서로 다른 것을 비교할 수 있고(많다와 적다), 비슷한 표현을 구분할 수 있고(깨지다와 망가지다), 긴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체구도 커지고 운동 능력도 나날이 좋아지는 시기라 떼를 부리는 정도도 심해진다고….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발달 시기에 맞춰 커주는 호야가 대견하고 고맙다. 호야가 잘 클 수 있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많아서인 것 같다. 남편과 나의 맞벌이 때문에 오전에는 어린이집을, 오후에는 친정부모님 댁과 시부모님 댁을 일주일에 몇 번씩 오가는 호야가 안쓰러울 때도 있지만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하다는 면에서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호야가 말을 배우는 좋은 친구가 또 있는 것 같다. 바로 뽀통령(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이다.

“맞다, 통통이가, 마법이 없어졌지? 미안해.”

“나는 악당 로봇이다~~”

만화 속 캐릭터의 말을 따라 하며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다들 너무해” 하며 감정 표현을 배우기도 한다. 어느 날은 집에 있는 뽀로로 캐릭터 모형을 하나하나 모으더니 로디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처음부터 로디 모형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부엌 한가운데로 뛰어가더니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는 “로디야 어딨니~~” 하고 찾는 모습에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바나나차차’나 ‘고래의 노래’, ‘윙윙윙 고추잠자리’ 등 주옥같은 뽀로로 노래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사실 '아이의 뇌 발달을 위해서 두 돌 전까지는 TV를 보여주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을 듣고 집에 TV를 두지 않았었다. 확실히 TV가 없으니까 통제가 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영상 노출을 완전히 막을 순 없었다. 호야는 14개월 때쯤부터 아이패드로  뽀로로를 보기 시작했다(정확하게는 남편과 내가 보여주기 시작했다 ㅜㅜ). 주로 밥이라도 평화롭게 먹고 싶은 식사 시간에 뽀로로는 여지없이 소환되곤 했다. 그나마 두 돌 전까지는 ‘하루 30분 이상 시청하지 않기’ 규칙이 잘 지켜졌는데 최근에 1시간 가까이 보는 날이 많아지면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두 돌 전까지 안 보여주는 게 좋다며… 이제 두 돌이 지났으니 좀 괜찮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루에 한 시간은 너무한 거 아니야?’


호야에게 뽀로로를 1시간 정도 보여주는 것이 괜찮은가 괜찮지 않은가라는 중차대한 문제 앞에 나는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걱정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너무 걱정할 것 없어. 뽀로로는 내용도 교육적이잖아.’


실제로 내가 어릴 적에 봤던 만화들은 (그 당시 만화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정의로운 주인공이 악당을 무찌르는 다소 폭력적인 장면이 많았던 데 반해, 뽀로로는 선인과 악인이 나눠지지 않은 데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규칙을 잘 지키는(일찍 자기, 장난감 치우기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친구와 갈등이 있다가도 마지막에는 서로 용서해주며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아… 안돼. 나는 지금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황급히 유튜브에 '아기 tv 시청'을 검색했다. 감사하게도 소아과 의사, 소아정신과 의사, 육아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올려놓은 콘텐츠들이 몇 개 눈에 띄었다. 무지몽매한 내가 그들의 영상을 보고 단순하게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영상 시청이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다만 영상을 볼 때 발달하지 못하는 뇌의 일부분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영상을 과도하게 볼 경우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져야 하는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또 몇몇 기관에서 정해준 ’영상 노출 가이드라인’이 얼추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 가이드라인>
만 2세 이전 : 보여주지 말 것
만 2~4세 : 하루 1시간 이상 보여주지 말 것
<미국소아과협회 가이드라인>
0~18개월 : 보여주지 말 것
18개월~만 2세 : 원하면 조금씩 시청
만 2~5세 : 하루 1시간 이상 보여주지 말 것


만 2세 이전에는 영상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좋고 만 2~5세 때는 보여주더라도 하루 1시간을 넘기지 말라는 이야기다. 불량 엄마인 나는 ‘하루 1시간’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래, 하루 1시간은 괜찮은 거였어!!!(1시간을 꽉 채우라는 뜻은 아닐 텐데…). 기준이 세워지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제는 1시간 내에서 뽀로로를 마음껏 보여준다. 호야는 말을 배우고 남편과 나는 쉴 수 있다. 이보다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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