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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Mar 27. 2022

도대체 봄이 얼마나 따뜻하려고

힘들었던 3월


봄이 와서 기쁘기만 할 줄 알았던 3월은 겨울보다 추운 한 달이었다. 날씨는 따뜻해졌을지 몰라도 그걸 느낄 틈도 없이 바쁘고 힘들었다. 일은 늘어나고 가족들은 모두 아팠다. 안 그래도 모래성처럼 위태롭던 육워라밸(육아 워크 라이프 밸런스, 내가 만든 말^_^)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첫 스타트는 3월 초였다. 호야가 어린이집 만 2세 반에 처음 등원한 날 저녁, 호야의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다음날 아침 허둥지둥 소아과에 들르고 호야를 부모님 집에 맡기는 등 한바탕 소란을 벌였다. 하지만 그건 앞으로 일어날 대환장 파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민센터는 이미 2월부터 아비규환이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그들이 모두 생활지원금을 신청하러 왔기 때문이다. 전에는 하루에 두세 명 오던 신청자가 이제는 하루에 50명 넘게 온다. 예산을 감당할 수 없으니 12월에 한 번 바뀌었던 생활지원금 지침은 2월과 3월에 한 번씩 또 바뀌었다. 민원 응대에 복지팀의 모든 직원이 투입됐고,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이유로 복지팀 내에서 생활지원금 담당자가 두 달 사이에 세 차례 바뀌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신청서가 산처럼 쌓였다. 2월에 쌓인 신청서는 직원이 다 같이 나눠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호야의 열이 내린 지 얼마 안 있어 그다음에는 차의 앞 유리에 금이 가는 소란이 있었다. 그날은 내가 감기몸살이 걸린 날이기도 했다. 병원에서 코로나 음성을 확인하고 약 처방을 받았다. 일주일 내내 감기몸살을 달고 일했던 그 주는(나이가 드니 회복이 더디다) 2월에 쌓인 생활지원금 신청서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서 밤 12시에 잠에서 깨 뒤척이다가 새벽 2시에 출근을 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 주 수요일에 선거사무원으로 일했던 남편은 주말에 몸살을 심하게 앓더니 일요일 자가 키트에 양성이 나왔다.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세 식구가 보건소와 병원을 다니며 코로나 검사를 받는 대장정이 시작됐다. 그 주는 마침 병원에서 양성이 나오면 보건소를 따로 가지 않아도 확진으로 인정되도록 바뀐 주이기도 했다.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받은 남편은 월요일부터 시가로 가서 격리를 시작했고 다음날 확진 문자를 받았다. 호야랑 나는 병원에서 음성이 나와서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호야랑 둘이서 오붓하게 잠드는 일은 행복했지만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육아까지 전담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이불을 덮어도 너무 추웠고 끙끙 앓으면서 몇 번씩 깼다. 화요일에 열이 40도까지 올랐을 때는 정말 기어서 출근을 했다. 수요일에 나랑 호야도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시가에 가 있던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호야는 다행히 콧물 외에는 코로나 증상이 없었다. 힘이 넘치는 호야를 골골대는 남편과 내가 보느라 힘들었을 뿐이다. 대부분 남편과 나는 거실에 누워있고 호야는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집에만 있어서 힘이 남아돌았는지 좀체 낮잠을 자지 않았다. 나가겠다고 보채지 않은 것만도 감사한 일이지만. 생존과 양육에 필요한 최소한의 일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며칠을 보냈다(쓰고 보니 평소에도 그렇긴 하다). 이제 봄이 왔다고 좋아했는데 그 좋은 날씨를 집 안에서 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꽤 고역이었다.


지난주부터 정상적인 생활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격리가 끝난 남편과 내가 나란히 출근을 시작했고, 금요일에는 호야가 다시 등원을 했다. 일은 여전히 많지만 건강이 회복되니 한결 살 것 같다. 다음 주에는 생활지원금 업무를 위해 주민센터마다 두 명씩 인력 충원이 된다고 한다. 그들이 두 달간 우리의 숨통을 틔워줄 거라 생각하니 마음에도 얼마간 여유가 생겼다.


도대체 봄이 얼마나 따뜻하려고 이러나.

겨우내 기다린 봄의 시작이 이러하니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아직 벚꽃이 피기 전이라 다행이다. 벚꽃이 만개할 무렵에는 내 마음에도 따스한 기운이 가득 비추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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