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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Apr 11. 2022

새치 염색한 날


마흔을 9개월 남겨두고 처음으로 새치염색을 했다. 나이를 거스르는 첫 시도다. 얼마 전,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보는데 흰 머리카락 두 올이 삐죽 보였다. 한 올이 보일 땐 애써 무시할 수 있었지만 두 올은 도저히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안쪽에 흰머리가 많아진 지는 좀 됐다. 임신했을 무렵에는 그래도 남편이 다 뽑아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출산한 후 언젠가부터 다 뽑을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예전에는

"우와, 노다지다."

하며 신나게 뽑아주던 남편도 이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지 뽑아주는 횟수가 줄었다. 방치된 흰머리는 이제 거울을 볼 때도 눈에 띌 만큼 늘어나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염색밖에 답이 없었다.


"나 염색해야 될 것 같아."

흰머리 두 올의 충격에 빠진 날 남편에게 말했고 어떤 색으로 염색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호야를 임신할 때부터 염색한 적이 없으니 3년 만의 염색이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새치 염색하려고요.”

호야랑 남편의 머리를 자르러 자주 가던 미용실에 이번에는 나 혼자 갔다. 미용사는 내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들춰보더니 “아 새치가 좀 있으셨네요” 했다.

“무슨 색으로 하시려고요?”

“와인색이요.”

미용사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 그 색은….”

그때 가만히 듣고 있었어야 했다. 나는 예전에도 내가 와인색으로 염색한다고 하면 내 머리카락에는 그 색깔이 잘 안 나온다거나 그 색깔은 유행이 아니라는 말을 항상 들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말이려니 생각하고 나는 그렇게 밝은 와인색을 원하는 게 아니며 그 색깔을 좋아해서 항상 그 색으로 염색을 해왔기 때문에 괜찮다는 말을 떠들어댔다.


“근데 그 색으로 하면 흰머리가 남아요.”

“…아… 어머, 그래요?”

미용사는 염색 샘플판은 가져와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갈색톤과 검은색톤으로 된 이쪽은 새치 염색으로 낼 수 있는 색이며, 여러 가지 색깔이 들어간 이쪽은 멋내기 염색이라는 것이다. 와인색 같은 멋내기 염색으로는 흰머리를 감출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흰머리 두 올을 볼 때보다 더 큰 충격에 빠졌다. 방금 떠들어댄 말을 주워 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염색은 2시간 정도 걸렸고 머리카락은 어두운 밤색이 됐다. 나는 그렇게 새치염색의 세계로 건너와 버렸다. 미용실에서 염색한 날은 항상 자아도취에 빠져서 셀카를 찍기 바빴는데 이번에는 셀카를 한 장도 찍지 않았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드는구나.’

숫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나이가 현실로 느껴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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