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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Apr 15. 2022

도서관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



지금 우리 가족은 국민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일 년 전 이사 온 첫날 나는 이곳이 마음에 쏙 들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경치가 아주 훌륭했기 때문이다. 집 바로 앞에는 하천이 흐르고, 그 너머로 놀이터와 풋살장, 축구장을 사이에 두고 멀찍이 건물이 있어서 시야가 답답하지 않았다. 왼편과 정면에 작은 언덕이 있어 들쭉날쭉 제멋대로 뻗은 나무와 맞닿은 하늘도 감상할 수 있었다. 국민임대 아파트니 몇 년 뒤면 이사를 가야 하는데,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아까울 정도로 이곳이 좋았다.


살다 보니 이 집이 좋은 이유가 더 생겼다. 가까운 곳에 지하철역이 있어 이동이 편했고, 근사한 공원이 두 곳이나 있어 나들이를 가거나 운동을 하기 좋았다. 그리고 걸어서 5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도 내가 이 집에 푹 빠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렇게 도서관이 가까운 곳에 사는 건 처음이다. 전에 살던 본가도 걸어서 25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긴 했지만(지금 우리 집 앞에 있는 바로 그 도서관!) 25분과 5분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다. 5분 거리는 딱히 마음먹지 않아도 수시로 들락거리기 좋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도서관은 마치 성당처럼 그곳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힘이 있어서(그러고 보니 성당도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코로나 핑계로 가지 않았을 뿐…) 그곳에 수시로 들락거린다는 건, 내게는 수시로 마음의 힐링을 받는다는 뜻과 같았다.

  

호야가 다니는 어린이집 근처에도 도서관이 하나 있다. 마침 작년 여름에 시작된 리모델링 공사가 얼마 전에 막 끝나서, 오늘 호야를 하원하기 전에 슬쩍 들러봤다. 열람실은 없어지고 개방형 복합문화공간으로 싹 바뀐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정관념 속에 있던 도서관의 모습을 싹 벗었다. 1층은 갤러리 같고, 2, 3층은 멋진 서점, 혹은 북카페 같기도 하다. 1층 어린이 자료실 안쪽으로는 꽤 넓은 유아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와 여기 너무 좋다!’

이 유아실을 호야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호야를 하원한 후 이곳에 다시 들렀다. 아기와 함께 걷는 길은 5분 거리도 10분 거리가 되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아까 유아실에서 본 아기들처럼 호야도 얌전히 엄마 옆에 앉아 함께 책을 읽겠지, 라는 택도 없는 상상을 했던 것 같다.


유아실에 들어선 호야는 곧바로 다다다다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원한 그림은 이게 아닌데….

“호야야 앞을 봐야지!”

호야가 뒤쪽에 있는 나를 보며 뛰어가는 통에 유아실에 있는 아기와 부딪칠 뻔했다. 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조용한 유아실에 울려 퍼졌다. 호야는 유아실 안쪽에 있는 수유실 소파에 5초 앉았다가, 유아실 책상에 5초 올라갔다가, 높은 곳에 올라가 점프했다가, 유아실을 탈출해 신발도 안 신고 어린이 자료실로 뛰어가기를 반복했다. 나는 호야와 유아실을 처음 들어갈 때랑 사뭇 다른 표정으로 10분 만에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다.

'저 아이들은 어떻게 저렇게 얌전한 거지.'

부러운 눈길을 던지면서.


그래도 호야처럼 뛰어다니는 걸 좋아하는 아이도 분명 많을 텐데, 도서관은 조용한 곳이어야 하지만 어린이 자료실이나 유아실은 아이들이 뛰고 소리 질러도 눈치 보이지 않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기자기한 디자인과 다양한 어린이 책도 좋지만 아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건 그 나이에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놀이터처럼 뛰어놀 수 있는 어린이 도서관을 원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인 걸까?


그래도 이곳은 넓은 유아실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조만간 호야랑 또 놀러 와야겠다. 10분 만에 또 나가게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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