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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Oct 09. 2020

하루에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초보 엄마의 개인 시간 확보 분투기


아기의 낮잠 시간. 그날도 밥을 먹고 커피를 탄 다음 노트북 앞에 앉았다. 글을 쓰려고 브런치에 접속했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브런치의 다른 글들을 읽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하루에 1시간 글쓰기가 목표였는데, 노트북 앞에 앉아만 있을 뿐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딴짓을 하기도 했고, 아기가 자다가 깨는 순간 글쓰기가 그대로 중단되기도 했다. 아기가 잠드는 동안 투명인간 모드로 있으면서 핸드폰으로 조금씩 메모를 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나에게 글 쓰는 시간은 하루의 여기저기에, 조각조각 나뉘어 있었다.


처음에는 글 쓰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려다. 글을 쓰는 동안 스톱워치로(작은 스톱워치를 사용하고 있고, 핸드폰으로 글을 쓸 때는 핸드폰에 있는 스톱워치를 쓰기도 다) 시간을 쟀다. 그렇게 1시간을 채워봤는데, 스스로 느끼기에도 평소 글을 쓰던 시간보다 제법 길게 느껴졌다. 역시 그동안 실제로 글을 쓰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스톱워치에 너무 의존하고 싶진 않지만, 나름 장점이 있어 사용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를테면,

어떤 특정한 일을 하는 데 보내는 시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STOP을 누르기가 번거로워서 의식적으로 내가 계획한 일을 계속하게 된다.

시간이 정확히 눈에 보이기 때문에 내 시간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며칠간 스톱워치를 사용하며 그것이 나에게 맞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자, 글을 쓰는 시간뿐 아니라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 하루 중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톱워치와 다이어리를 사용해 '하루 중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을 확인해 보기로 한 것이다.


2015년 가을부터 사용하고 있는 3P 다이어리


방법은 간단했다.

1. 매일 (그날의 여유 시간이 생기자마자) 다이어리를 펼쳐서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적는다.

2. 각 일을 할 때 스톱워치를 켜서 시간을 잰다.

3. 그 시간을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4. 내가 확보한 개인 시간을 확인한다.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 적기

내가 쓰는 다이어리의 주간 계획표에는 매일 to-do 리스트에 7가지를 적을 수 있었는데, 그중 4가지 정도를 내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었다. 그리고 집안일이나 육아에 관련된 (개인 시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스톱워치로 확인하지 않는 일들을) 나머지 3개의 칸에 적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식으로.


< to-do 리스트 >
- 빨래하기
- 아기 목욕시키기
- 아기 재우기
- 성경필사 1/2p (개인 시간)
- 책 읽기 20p (개인 시간)
- 운동 5분 (개인 시간)
- 글쓰기 1시간 (개인 시간)


3가지를 집안일이나 육아에 관련된 일로 적은 제일 큰 이유는, 매일 당연하게 하고 있는 일들이지만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들이라는 걸 분명하게 해두고 싶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어차피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소소한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내가 한 일에 대해 X 표시를 하면서 좋은 기분을 느끼고는 했는데, 다이어리를 쓴 뒤로 집안일은 당연히 X 표시가 되는,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는 일들이 됐다(그래서 집안일 중에서도 유난히 하기 싫은 일이나 힘든 일을 적고는 했다).


나름 신경 썼던 게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만(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만) to-do 리스트에 적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에이, 설마 이 정도는 하겠지, 이런 생각이 드는 정도로 정했다. 물론 그렇게 최소한으로 적는다고 해도 못하는 일들은 수두룩 했다. 하지만 못하는 일이 하는 일보다 너무 많아져 버려서 의욕이 꺾이는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남편이 함께 있는 주말에는 변수가 많다는 걸 알아버린 후로, 주말에는 아예 계획을 거의 세우지 않기도 했다.



내가 보낸 개인 시간 기록하기

to-do 리스트 밑에 시간 계획표에는, (적혀있는 시간을 무시하고) 위에서부터 한 칸을 10분으로 계산해서 기록했다. 시간을 미리 계획하는 게 아니라 리스트에 적힌 일을 하는 데 보낸 시간을 나중에 표시했다. 스톱워치에 30분이 찍혔다면 3칸을 채웠다.


10분 단위로 기록을 하기 시작하면서, 전보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일이 적어졌. 전에는 10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으면 핸드폰을 보는 등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지금은 전에 비해 10분이라도 차곡차곡 쌓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매일 들쭉날쭉한 '내 시간'들.



'내 시간'을 확인하면서 알게 된 것과 얻은 것

50일 넘게 '내 시간'을 확인해보면서, 두 가지 현실 직시를 하게 됐다. 하나는 생각보다 내가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 그리고 책 읽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내 시간'2시간은 충분히 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하루 평균 1시간 반도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 시간'을 늘리기로 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내 하루를 보다 제대로 보게 된 것만으로 목적은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내 1순위는 어쨌든 육아이기 때문에, '내 시간'은 그 나머지 시간을 활용하는 것일 뿐이었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초보 엄마로서 '내 시간'을 늘리는 일에 에너지를 쏟을 깜냥은 아직 되지 않았다. 그저 이제는 하루에 2시간이 아니라 1시간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면 만족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문제는 책을 못 읽는 날많다는 거였는데, 이 역시 내가 내린 처방은 일단 글 쓰는 시간을 줄이는 거였다. 하루 1시간에서 30분으로 글 쓰는 시간을 줄이고, 그 줄어든 시간에 책을 읽으려고 하고 있다(그럼에도 실패하는 날은 아직 많지만).


이렇게 시간관리를 하게 된 후로 확실하게 얻은 게 하나 있다면, 그건 '하루를 적당히 잘 보내고 있다'는 기분을 매일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알 수 없던 하루들이 좀 더 명확하게 보이게 됐다.


그리고 출산 이후로 거의 사용하지 못했던 다이어리를 쓸 수 있게 된 것도 좋았다. 출퇴근 시간처럼 아기가 일정한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시간 계획을 세울 수 없어 다이어리를 계속 쓰지 못했었는데, 그런 면에서 시간을 먼저 보내고 기록을 나중에 는 방법은 꽤나 유용했다.


이것은 육아 한복판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시도한 작은 꿈틀거림(?)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수한 하루 1시간 반스스로를 지키는 데 꽤 도움이 었고, 나를 위한 소중한 놀이 시간이 되어주었다. 소제목은 '초보 엄마의 개인 시간 확보 분투기'이지만 사실 딱히 분투하지도 않았고, 계획을 못 지킨 날에 반성 따위를 하지도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단지 오늘 하루 스스로에게 활력과 즐거움이 되기바랐는데 상당 부분 그렇게 된 것 같. 그래서 당분간은 이 방법을 계속 사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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