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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Feb 25. 2021

아기방이 아닌 내 방을 만들었다


두 달 전에 이사한 집에는 방이 두 개 있다. 이사하기 전에 남편과 나는 방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두 개 중 하나는 아기와 함께 자는 침실로 쓸 계획이었지만 남은 방 하나가 문제였다. 남편은 방 하나를 아기에게 주고 싶어 했고 나는 "아기는 아직 방이 필요 없다"라며 "내 방을 달라"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외동아이인 경우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의 방을 따로 만들어주지 않는 것이 좋다. 설사 방을 따로 마련해주더라도 결과적으로 '잠만 자는 방'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외동아이 키울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224p)"는 말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서다. 잠은 어차피 아기와 같이 잘 거고, 거실은 아기의 놀이터가 될 게 뻔했다. 아기에게 방을 줘봤자 놀이터가 하나 더 생기는 것뿐이고, 지금 방이 필요한 사람은 아기가 아니라 나라고, 줄기차게 남편을 설득했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정색하던 남편도 조금씩 내 말을 들어줬다.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봤었는지, 어느 날은 집에 와서 "아기방이 있어도 아기가 방에 잘 안 있는다고 하긴 하더라" 하고 말했다.


그렇게 남편의 통 큰 양보로 결국 내 방이 생겼다. 내 방이라고 하지만 사실 내 물건은 방 한구석에만 자리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 귀퉁이에 좌식 책상과 책장과 피아노 키보드가 놓여있다. 나머지 공간은 남편과 함께 드레스룸으로도 쓰고 아기에게 위험한 물건을 치워놓는 공간으로도 쓴다.


내 방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행복도도 높아졌다. 아기가 낮잠과 밤잠을 자는 동안 내 방에 틀어박혀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면서 내 시간을 꾹꾹 채우기 때문이다. 집 한 곳에 내 공간이 있다는 건 안정감과 활력을 준다. 부지런히 남편을 설득하길 잘했다. 글을 쓰다 보니 남편에게 또 고마워진다. 오늘은 남편에게 좀 더 다정하게 대해줘야겠다.



내 방(겸 드레스룸 겸 창고). 차마 사진으로 찍지 못하는 방의 다른 쪽 부분에는 남편과 내 옷이 걸린 행거와 아기를 피해 피신 온 물건들이 있다.







2월 5일부터 30일 동안 매일 글을 발행합니다. (21/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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