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울면서 계속하는 것들이 나를 만든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 깨달은 것

by 햇살바람


나는 33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복지직 공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합격하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제일 힘들었던 건 '시험에 붙을 수 있을까' 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을 견디는 일이었다. 시험에 붙는 건지 알 수만 있다면 시험 준비가 힘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창 공부를 하고 있다가도, 불안감이 한번 들기 시작하면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전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시험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공부가 재밌기도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본 적이 없어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갖고 있던 아쉬움을 이번 기회에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공부하는 법을 몰랐고, 나한테 맞는 공부법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 한 달은 책상에 10시간 이상 앉아 있는 게 목표였다. 나중에는 쓸모없다고 느낀 정리 노트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국어, 영어, 한국사 필수 과목 3개에 행정학, 사회복지학 선택 과목 2개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1년은 정말 맨땅에 헤딩하듯이 공부했다.


게다가 처음 8개월은, 이미 성당에서 맡고 있던 일이 있어서 온전히 공부를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임기가 끝나고, 첫 번째 시험 전까지 3~4개월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이전의 8개월 동안 부족했던 시간을 만회하려면 3~4개월의 시간을 전부 놓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하루 평균 16시간 동안 쉬는 날 없이 공부를 했다.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전부 공부를 했던 셈이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씻을 때도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했다. 화장실 거울에는 영어단어가 붙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는 순간부터 스톱워치를 켰고, 일초씩 지나가는 시간을 노려보며 일분일초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날도 평상시처럼 집 근처 도서관에서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지났을 즈음, 친한 지인으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다. 300만 원 정도의 돈을 빌려달라는 문자였다. 나는 내가 가진 돈의 액수를 머릿속에서 빠르게 확인했다. 빌려주려면 어떻게든 빠듯하게 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려면 내가 시험이 끝난 후 가려고 계획한 여행을 포기해야 했다.


'돈을 빌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스톱워치의 시간은 1초 2초 착실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공부를 하고 있지 않으니 스톱워치를 멈춰야 했는데, 스톱 버튼을 누르면 안 될 것 같았다. 내 눈 앞에서 흘러가는 시간이 1초씩 정확하게 보였고 나는 점점 마음이 급해졌다.


그냥 아는 사람 정도면 무시해버리고 말 텐데 친한 지인한테 온 연락이었다. '얼마나 급하면 내 상황을 알면서도 연락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원망이 동시에 들었다.


공부의 흐름을 잃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내가 걸어가는 살얼음판 위에 큰 돌이 떨어진 것 같았다. 나는 돌이 떨어진 충격을 고스란히 느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내 손은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빌려줄 수 없을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답을 했다. 하지만 이미 공부의 흐름을 놓친 뒤였다.


가뜩이나 시험을 잘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불안감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그때 놓쳐버린 시간이 그 불안감을 더 크게 만들었다. 이때까지 버틴 시간이 무너졌다는 실패감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화장실에 들어가 우는 걸로는 진정이 되지 않아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대로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 세상이 끝난 것처럼 울었다. 짐승 같은 울음소리에 방에 있던 엄마가 깜짝 놀라서 부엌으로 왔다. 내가 정말로 잘못되면 어떡하나 하는 얼굴로, 선뜻 나에게 다가오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다시 도서관을 갔다. 항상 해가 뜨기 전에 도서관을 가서 해가 진 다음에 도서관을 나왔었는데, 한낮에 터덜터덜 도서관으로 가는 내가 낯설었다.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고집스럽게 앉아 있었다. 문제집을 한 손으로 꼭 붙잡고 문제를 풀었다.


언젠가 '시험에 붙는 사람과 떨어지는 사람의 차이점들'을 언급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어느 행정학 강사가 수험생들을 위해 찍은 영상이었는데 그의 말을 듣다가 나는 갑자기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시험에 떨어지는 사람은, 불안감 때문에 공부가 안 될 때 공부를 못 한다. 하지만 시험에 붙는 사람은, 불안감 때문에 공부가 안 되면, 울면서도 공부를 한다.



그 일 이후에도 나는 많이 울었다. 꼭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더라도 가슴으로 운 날이 많았다. 때로는 몇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구질구질하게라도 책상에 붙어 있으려고 했다. 울면서도 매달리는 순간은 시험을 보는 날까지 따라왔다. 국어 시험지 맨 첫 장에서 당황스러운 문제를 만났을 때, 나는 시험장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때도 울면서 문제를 풀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글을 쓴다. 스스로가 보잘것없어 보일 때는 지금의 시간이 의미 없게 느껴지고, 내가 이렇게 글을 써서 무엇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면 그 행정학 강사의 말을 지금 상황에 대입해 본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불안감 때문에 글이 안 써질 때도, 울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그러면 아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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