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독서모임의 시작은 단순했다. 그저 회사와 집을 반복하는 단순한 동선을 탈피하고 싶었다. 평일에는 일에 치이고, 주말에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집에서 멍하니 쉬는 일상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숨통을 트이게 해 줄 활력소가 필요했다. 고로 일 외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그 무언가가 내가 좋아하면서도 나름 생산적인 활동이었으면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독서모임 회원을 모집한다는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내 성향이랑 맞을 것 같아서, 일단 시작해보자 싶었다. 시작을 안 하면 지금의 일상에서 조금도 변하는 것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일단 나가고,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두자는 마음이었다.
첫 모임 때 무슨 책을 읽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간에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싶어 쭈뼛쭈뼛 거린 것만큼은 기억이 난다. 이상한 사람(?)을 거르는 명목으로 모임장에게 필수로 명함을 제출해야 했는데, 나 또한 첫 모임 때 명함을 내밀면서 괜히 쑥스러워했었다.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명함을 건넬 일은 매우 드무니까. 아무튼 그 첫 모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3년 이상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본 영화 <범죄도시 4>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마동석이 특정 상황이 벌어진 것을 두고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라며 장난스레 내뱉는 장면이 바로 그것인데, 관객을 웃기기 위한 연출이지만 곱씹어볼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글쓰기 모임에서 이 이야기가 글의 주제로 나왔을 때, 정말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마동석의 대사처럼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은 것이다.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더 흥미로운, 독서모임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
첫 번째로는 책을 편식하지 않게 된다는 것.
내가 하는 모임은 모임일에 읽어야 하는 책이 정해져 있다. 몇 개의 책이 후보로 올라오면 구성원들이 읽고 싶은 책에 투표하고, 다수결에 따라 다음 모임의 책이 정해지는 구조다. (애석하게도 내가 추천한 책이 선정된 적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다음 모임 때 참여하려면 내가 투표하지 않은 책이어도 읽어야 한다.
주로 에세이나 소설을 읽는 터라 그 외의 책에는 눈길을 잘 안 주는 편이었다. 특히 SF 소설이나 과학 관련 책은 완독 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애초에 손도 잘 안 갔다. 그렇지만 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내 기준에서 별로 재미없어 보이는 책이어도, 다음 모임 때 참여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너무 내 스타일이 아닌 책이 선정되면… 불참했을 때도 있었지만…) 별로 읽고 싶지 않았던 책은 미루고 미루다 모임 직전에 벼락치기로 읽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읽고 나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네’ 싶을 때가 꽤 많은 것 같다. 독서모임이 계기가 되었는지, 요새는 예전보다 다양한 장르의 책도 꽤 접한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지루하지 않더라. 새로운 책과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는 재미도 있다.
두 번째,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듣는 것.
독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혼자 하는 행위다. 읽을 책을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활자를 읽어나가는 것, 읽은 후의 감상을 떠올려보는 것까지 독서와 관련된 모든 행위는 본질적으로 고독하다. 누군가와 나눠야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독서란 ‘내’가 하는 것이고 ‘나’의 세계를 넓히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독서모임은 독서와 모임, 두 가지 모두에 방점이 있기 때문에 책을 읽고 쌓은 나의 이야기를 반드시 누군가와 나눠야 한다. 나뿐만 아니라 참여하는 구성원 모두 마찬가지다.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누군가의 이야기로 인해 깨닫게 되기도 하고, 유사한 감상을 나누며 서로 공감하기도 한다. 이처럼 나의 이야기에 머물러 있었던 책의 내용은 모임의 소재가 되면서 훨씬 풍성해진다.
무엇보다 회사에서는 나의 직무와 관련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일이 많은데, 각자의 일상이 비슷해서 이야기의 관점 또한 비슷할 때가 많다. 반면, 독서모임에서는 다양한 배경지식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내 관점에만 갇혀 있었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다. 내가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마지막,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책도 좋지만, 그럼에도 모임을 지속하는 이유는 역시 ’사람‘인 것 같다. 책 이외의 이야기를 구성원들과 가볍게 나눌 때에도 사람들의 결이나 태도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데,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은 넓게 보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태도가 비슷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모임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흥미롭고 재미있게 들리고, 많이 웃게 되는 건가보다. 3년간의 독서모임으로 다른 모임에도 참여할 용기를 얻게 되기도 했다. 활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튼간에 대체로 비슷한가 보다, 한다.
일만 할 수는 없어서 시작한 모임을 꽤 오래 지속하고 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책을 많이 추천하고, 또 추천받고 싶다. 눈으로, 소리로 보고 나눈 이야기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단단한 마음의 근육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