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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뇽안뇽안늉 Aug 17. 2024

여름의 기억들

시작 혹은 종료의 계절

여름에 대한 글을 쓰려고 지난 나의 여름들을 되돌아보았다. 특별하다고 말하기는 조금 쑥스럽지만, 그래도 내 삶에서 나름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만났던 계절이었더라.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혹은 무언가를 끝내기도 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렇다는 말이지만, 새삼스러운 의미 부여가 가끔은 지루한 일상에 힘이 될 때가 있는 법.






종료의 기억이라면, 우선 2016년도의 졸업을 꼽을 수 있겠다. 겨울이 아닌 여름의 8월에 졸업한 이유는 취업 준비로 한 학기 졸업을 늦췄기 때문이다. 막학기 수업을 들으며 멋지게 취업까지 성공하고 싶었지만 가을과 겨울을 거친 나의 첫 취업 준비는 아주 보기 좋게 실패했다. 자기소개서를 몇 십 군데 넣고, 그중 일부는 인적성을, 또 그중의 일부는 면접을 보았지만 결론적으로 그 당시의 나를 원했던 곳은 없었다. 취업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꼈다.

겨울이 더 춥게 느껴졌다면 매우 진부한 수식이지만 그렇게 밖에 표현이 안 되는 2015년의 겨울이었고 인턴을 하면서 한 학기 졸업을 미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의 봄에도 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더 이상 졸업을 미루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고로 2016년도 8월에 나는 학교와 진짜로 안녕했다. 졸업과 동시에 대학생이 아닌, 취준생이라는 어중간한 신분의 시작이기도 했다.


또 다른 종료의 기억은 2019년도 8월이다. 나를 뽑아준 첫 회사를 내 발로 나온 시기다. 좋은 동료들과 만나 차근차근 일을 배우는 주니어였지만 조금 더 성장하는 업계에서 일하고 싶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시 도전을 해보자고 마음먹었고, 그렇다면 내 손으로 퇴로를 없애 절박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한 취업 준비는 역시나 녹록지 않았고, 울며불며 4개월을 버티다 그 해 겨울 두 번째 회사에 중고신입으로 입사했다.

왜 꼭 여름에 무언가를 결심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이라 그런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거나, 혹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무의식적으로 생기는 건가?


2021년도 8월, 세 번째 회사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광고 대행사의 업무가 극한이라서 그 해 봄부터 이직 준비에 열을 올렸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거의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즈음이었다. 이번 여름이 지나도 성과가 없으면 그냥 올해 성과급 받고 심기일전해서 내년에 재도전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딱 8월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종종 느끼는 것은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발 동동거리며 한참을 전전긍긍하다가 이만하면 됐다 싶어 조금 내려놓는 그 시점 말이다. 마음 정리하려고 묵호로 혼자 여행도 갔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좋은 소식을 얻었다.

세 번째 회사는 내 또래의 구성원이 대부분인 젊은 회사였다.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스타트업’이었고 꽤 다이내믹한 회사 생활을 보냈다. 신기하게도 두 번째 회사의 동료와 같은 시기에 이 세 번째 회사로 함께 이직하게 되었다.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꽤나 의지했고, 지금은 회사 동료를 떠나 내 인생에서 중요한 벗이 되었다. 그 해 여름이 없었다면 소중한 친구를 만나지도 못했을테지.


그리고 마지막, 시작의 기억이다. 그러니까 여름의 초입인 2023년 6월에 지금의 회사로 입사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좋은 전우(?)들과 함께 쉽지 않은 회사 생활을 서로 의지하며 나름대로 버티고 있다. 동기들과는 우스갯소리로 서로가 없었으면 이놈의 회사를 때려치웠을 거라고 이야기하는데, 가끔은 정말 그랬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셋 다 원래 입사를 결정했던 직무가 전부 바뀌어버렸으니까. 신사업을 하러 왔는데 입사 2개월 만에 추진하던 신사업을 접었기 때문이다. 여름은 자의 반 타의 반 나에게 변화를 안겨다 주었구나 싶어 더 새삼스러운 마음이 된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벌써 8월 중순이고 24년 33살의 여름도 거의 끝나간다. 굳이 의미를 찾아보자면 올여름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 정말 오랜만에 콘텐츠 촬영도 진행했고, 첫 국내 출장도 다녀왔다 (해외 출장은 몇 번 갔었는데 국내 출장은 처음이더라). 나의 시작에 늘 여름이 있었구나 생각하면 이 시기가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즈음 나는 올 여름의 작은 터닝 포인트로 무엇인가 변해 있을까? 달라져 있을까? 요란스러운 기대감인가 싶지만, 이를 동력 삼아 나름대로 일상을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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