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도 디지털을 활용하고 있습니다만…
글쓰기 모임에서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관련해서도 깊게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요새 스마트폰 없이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려서, 아날로그와 얼마나 거리감 있게 살고 있는지 스스로 인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긴 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하루의 시작과 종결에는 언제나 스마트폰이 있다. 나의 경우는 핸드폰으로 알람을 끄는 데에서부터 아침이 시작되고, 다시 내일의 아침을 위해 알람 시각을 맞추는 것에서 하루가 끝나니까 말이다. 거의 숨 쉬듯(?)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어서인지 한 번쯤 떨어져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크게 한 적이 없다. 특히나 영화와 드라마 같은 영상 매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더욱! 디지털과 떨어진 일상이란 상상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명분으로 이북리더기도 샀다. 직접 책을 ‘집고’, 페이지를 ‘넘기는’ 데에서 내가 ’ 읽고 있음‘을 감각하게 하는 종이책의 매력이 더욱 크긴 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좀 무겁고 편의성이 떨어지는데, 종이책의 물성이 주는 만족보다 불편함이 이동 중에는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중고로 4만 원을 주고 매우 저렴하게 구매했음을 고려하면 현재의 만족도가 정~말 크긴 하다. 왜 이북리더기를 사라고 하는지 알겠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디지털이 마냥 편리함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편해진 상황들도 있다. 실제로 내가 매우 좋아하는 것들, 디지털로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취미인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하면서도 중간중간 나는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스마트폰을 사기 이전에는 이런 적이 거의 없었다. 그냥 핸드폰이 전화 기능에만 충실했을 적에는 오롯이 내가 현재 하고 있는 것에 훨씬 집중하기 쉬웠다. 왜냐하면 집중력을 앗아갈 그 어떤 것도 그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더불어 친구들의 전화번호나 생일을 외우지 않게 되었다. 스마트폰이 알아서 생일도 알려주고! 전화번호는 검색만 하면 나오는데, 뭐 하러 외우고 있단 말인가. 하물며 공중전화도 없어서 전화번호를 외워야 할 필요성마저 없어졌다.
서로 주고받는 명함은 이제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리멤버’라는 어플 덕에 명함을 저장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받은 명함은 처치곤란이 되어 회사 사물함 어딘가에 처박히거나, 때로는 영수증과 뒤섞여 버려진다. 이렇게 누군가의 개인정보는 무방비 상태로 어딘가를 떠돌 테다. 물론, 나의 명함도 누군가에게는 그럴 것이다. 이쯤 되면 명함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어진다.
사원증도 모바일에, 은행 계좌도 모바일에, 신용카드도 모바일에, 교통카드도 전부 모바일에 있다. 나의 일정은 더 이상 다이어리가 아니라 핸드폰 속 구글 캘린더에 저장되어 있다. 톺아보니 스마트폰으로 하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이 정도면 내 손 안의 작은 세상이 아니라 큰 세상 그 이상이 아닌가…
채식도 단계가 있다고 했던가. 모든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부터 일부 수산물을 소비하는 채식 단계도 있다지. 그렇다면 디지털 디톡스도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하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예 떨어져서 살 순 없다. 하다못해 출근은 해야 하니까! 사원증이 없으면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고로 출퇴근 길에서는 스마트폰을 보기보다 종이책을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는 거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는 스마트폰을 저 멀리 두거나 아예 꺼두는 것도 방법이겠으며, 또는 기간을 정해두고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접속하지 않는 것도 좋겠다. (SNS는 마케터라는 직무만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삭제했을 것이다. 멘탈 관리에 정말 좋지 않은 것 같다.) 몇 가지 작게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면 디지털 디톡스도 나름 성공적으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디지털 디톡스라기보다는 스마트폰 디톡스에 가깝겠지만. 모든 디지털을 배제하고 아날로그 세상에서만 살겠다는 결심은 도저히 지킬 자신이 없다. 그러기에 나는 이미 미디어 콘텐츠의 노예다…
사실 이거 꼭 해야 하냐고 물으신다면 음… 대답하기 어렵다. 안 해도 그만이다. 굳이 의미를 찾는다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시간을 의식적으로라도 가져보자는 것이 아닐까? 스마트폰은 지금 이 순간의 나와 그 주변의 것들과 멀어지게끔 하는 놀라운 힘(?)이 있는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타인의 현재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다 보면 나의 현재가 보잘것없게 느껴지고, 지금 침대에서 뒹굴뒹굴 댈 게 아니라 마냥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아 불안해지고는 한다. 적어도 보이지 않는 스마트폰의 구속에서 한 번쯤 자유로워지는 것도 해봄직한 경험이 아닐지? 원래 우리는 스마트폰 없이도 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