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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는 이유

가끔은 좋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싫어서 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by 안뇽안뇽안늉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와 최근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여행을 소재로 수다를 떨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여행을 왜 하는 건지로 흘러갔을 뿐이다. 서로 비슷한 상황에 있는 친구라서 인생 노잼이다… 활력소를 찾아야 한다… 일상이 똑같다… 와 같은 시니컬한 푸념을 함께 늘어놓고는 하는데, 친구가 그래서 여행을 가는 것이라고 했다.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다르지 않고, 그때나 지금이나 매일매일이 똑같으니, 다른 나라로 가면서까지 현생을 탈피하려는 거라고. 공감했다. 여행 자체를 좋아하긴 하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려는 목적도 분명 존재한다. 이곳이 아니면 어디든 좋다는 마음이랄까.


그래서인지 나는 주로 혼자 여행하는 쪽을 택한다. 친구들과 가는 것도 물론 즐겁지만, 아무래도 동행이 있으면 신경이 안 쓰이려야 안 쓰일 수가 없다. 아무리 가깝고 친한 사이더라도 그렇다. 나는 걷다가도 쉬고 싶으면 눈에 보이는 카페 아무 데나 들어가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는 책을 보든 일기를 쓰든 하는 편이다. 하지만 동행이 있으면 내키는 대로 할 수가 없다. 먹고 싶으면 먹고, 걷고 싶으면 걷고, 앉고 싶으면 앉는 조용한 여행이 내 성향에는 더 잘 맞는 것 같다. 목적은 스트레스 해소에 있으므로 여행지에서만큼은 남 신경 안 쓰고 나 하고 싶은 대로 충분히 해보는 것이다. 물론 둘이어서 더 좋았던 여행도 있긴 하지만, 최근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는 것 같다. 다소 씁쓸한 결론이기는 하지만.


현생이 싫어서 떠나는 것이라 목적지는 늘 외국이었다. 국내 여행은 일상을 벗어난 것도 아닌 것도 같은 것이, 뭔가 애매모호하다. 어딜 가나 들리는 모국어는 익숙함과 새로움, 그 사이를 어중간하게 맴돌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회사 생각, 일 생각, 고민거리 등등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일상의 요소들을 어느새 다시 떠올린다. 더군다나 나 홀로 여행객은 많이 없어서, 조금 유명한 카페나 맛집을 가면 주변이 다 두 명 이상이라 은근히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나는 경비가 조금 더 들더라도 외국으로 나가는 편이다. 하다못해 가까운 일본으로라도. 누가 봐도 나는 여행자, 이방인이므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한 해방감을 느낀다. 실수를 해도 ‘나는 여행자니까!‘ 라는 생각에 태도 또한 당당해진다. 조금 서투를 수도 있지! 하는 종류의 뻔뻔함이다. 현지인들의 시선 또한 넉넉하다. 우리가 외국 여행객들의 서투름을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게다가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어차피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반강제적으로 타인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더욱 그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또 어디를 가볼까, 무엇을 먹어볼까 와 같이 바로 오늘을 어떻게 꾸릴지만 신경 쓰면 충분한 것이다.


계획도 없이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여행이 간절할수록, 빈도가 잦아질수록 지금이 불만족스럽다는 반증일 것이다. 어차피 여행은 계속할 수 없다. 타국에서 몇 번의 밤을 보내고 나면 결국에는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있냐 하면 그것도 딱히 아니고…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요즈음이라고 생각하면서 또다시 스카이스캐너를 뒤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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