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태산’은 카드값에 적용되는 말인 듯
목돈을 대범하게 지출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월 카드값을 보면 놀랄 때가 많다. 어… 내가 이렇게 많이 썼었나… 하는. 토스에 자동으로 기록되는 일별 지출 목록을 보면 5만 원 이상 지출한 것도 없다. 그런데 왜 나는 당황스러운 금액의 카드 명세서를 받아 들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5천 원 하는 커피값, 2만 원 하는 책 값, 영화 티켓비, 가끔 하는 1만 원~2만 원가량의 외식 등등. 대부분 건별로 3만 원이 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들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이처럼 소소한 금액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가계부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평소의 동선을 회고할 수 있는 이유다. 대체로 이런 식이다. 퇴근하고 바로 집에 가긴 아쉬우니 5천 원짜리 커피 한 잔 마시며 쉬거나, 혹은 서점에서 책 구경하다가 당장 오늘 읽으면 재밌을 법한 책을 구매한다고 2만 원을 쓰거나,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해 1만 원가량을 극장에서 쓰는 식이 이어진다.
자잘한 지출을 이어가다가 때로는 돈을 좀 써서 나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대체로 스트레스를 좀 받았거나, 기분이 가라앉은 날이다. 그렇다고 10만 원 이상을 쓰려니 소심해져서 5~6만 원 선에서 나 자신과 타협한다. 그렇게 구매하는 것이 옷, 귀걸이, 향이 나는 핸드크림이나 향초 등이다. 내게 있어서만큼은 사치품들이다. 필요하진 않지만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것에 돈을 쓰고 하루의 스트레스를 털어낸다. 대체로 나는 이런 식으로 소비한다. 몇십만 원 이상을 통으로 지출하기보다는, 소소한 것들에 기꺼이 돈을 쓴다. 아까운 줄도 모른다. 나의 카드값은 차곡… 차곡…. 쌓인다.
사실 이는 내가 내 하루를 알차게 꾸리려는 일종의 노력이다. 어차피 집에 가서 늘어져 있을 테니, 그럴 바엔 5천 원을 내고서라도 카페에 가서 뭐라도 읽자는 식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즉흥적인 소비를 줄여야겠다고 자주 반성하지만 개선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다. 예쁜 카페에서 사진도 찍고, 커피가 맛있는지 나름 평가도 해보고, 앉아서 일기를 쓰든 책을 읽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다 보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뭐… 그 정도는 해도 되겠지?
소비에 나름의 원칙은 있다. 기능과 효용이 있는 것을 사고, 기준은 ‘나’다. 나에게 기능과 효용을 주는 것이어야 지갑을 연다.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살 때도 ’덜‘ 쓸데없는 것을 고른다. 대부분 직접 쓸 수 있는 것들이다. 일기를 쓸 노트를 사거나, 안경집, 필통, 동전지갑 등등… 관상용 기념품은 거의 안 산다 (잔망루피 피규어 같이 정말 귀여운 것은 사기도 하지만 ㅋㅋ).
고로 평일의 소소한 지출들은 나에게 효용 가치가 있는 것들의 집합체다. 하루를 잘 마무리하기 위한 것들,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것들, 즐겁게 만드는 것들, 덕분에 오늘도 잘 보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의 모음이고 나는 그런 것들에 기꺼이 돈을 쓴다. 비록 그렇게 모이고 모인 카드값은 월말의 나를 놀라게 하지만, 그건 또 월말의 내가 잘 처리할 것이라 믿는다.
오늘 같이 덥지만 맑은 날, 2천 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사각대는 얼음 소리를 들으며 동네를 산책하는 산뜻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소소한 소비를 멈추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