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게 없었던' 한 달
저번달은 송년 버프로 나름 바빴다. 평소의 내가 보내는 연말과 비교해도 분주했던 편이었다. 가끔 지치기도 했지만,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이 피로를 상쇄했다. 그렇게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맞이한 2026년의 첫 달이었건만.. 이번 달은 왜 이리도 고됐던 건지. 개인적인 일로도, 업무와 관련해서도 에너지 소비가 컸던 달이다.
일단 업무가 너무 바빴다. 1월 첫 주가 개시되자마자 야근은 물론이거니와 주말 출근까지 불사해야 했다. 몇 개월 전 팀의 성격이 바뀌면서 일이 다소 바빠질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연 초 윗선에게 보고해야 하는 업무가 늘어나면서 덩달아 준비해야 하는 자료의 양도 늘어났다. 와중에 완성도까지 챙겨야 하니 이건 뭐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판국이었다. 어찌어찌해서 프로젝트 하나를 끝내놨더니만 개인적으로 쳐내야 하는(?) 업무가 계속 떨어졌다. 내 커리어에 도움 되는 일인가 자문해 보면 내 연차에는 더더욱 아니라는 답만 떠올랐기에 체력도 체력이지만 멘털이 흔들렸다. 이 일을 1년 가까이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 이 회사에서 2년 반 넘게 한 팀에 있었으니, 이제 슬슬 내 전문성을 개발하는 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진급도 못했다. 평가는 가장 좋았다고 했지만 문제는 진급 TO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책임급 진급을 기대하던 다른 분들도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솔직히 털어놓자면 조금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엄청 아쉽지는 않았다. 말장난 같지만 사실이다. 진급 후에 팀을 옮기겠다고 하면 내 진급을 위해 애써주신 팀장님께 죄송한 일이니 나는 오히려 잘 됐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히려 팀장님이 너무 미안해해서 내가 다 당황했다. 하긴, 이런 상황에서는 대부분 관리자가 엄청 미안해하더라. 주변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팀원이 손해를 본 경우에 말이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며칠 전 부문장님을 찾아갔다. 팀을 옮기겠다고, 직무를 바꿔보겠다고 의사를 표현하는 일은 직장인이 된 후로 처음이었다. 늘 받아들이는 편이었고, 정 아닌 것 같으면 상급자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기보다 이직을 했다. 괜히 아쉬운 소리 하기도 싫거니와 자칫 서로 기분이 상할까 봐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올해는 정말 용기를 내고 싶었고, 또 내 의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연차도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했다. 원래 마음속의 D-DAY는 다음 달 설 전이었으나 팀장님이 자리를 비운 점심시간에 '지금이다' 하는 생각에 홀린 듯(?) 부문장님 방문을 두드렸다.
말씀드리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별 것 아닌' 일이었다. 부문장님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며 나의 변동 의사에 나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셨다. 기대했다. 옮길 수 있을 거라고.
어제까지만 해도 일은 힘들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올해 반드시 팀을 옮길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며. 드디어 나도 내 브랜드를 개발해 볼 수 있겠다 생각하며.
팀장님이 알게 됐다. 연락이 왔다. 결론은 못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당장 어딘가로 이동할 생각은 없었고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팀장님이 나에 대한 이런저런 칭찬을 하면서 결론적으로 나를 대체할 사람이 없다는 말에는 맥이 탁 풀렸다. 물론 팀이 안정화되면 당연히 너의 이동을 고려해 주겠지만 나 말고도 다른 팀원이 이동 의사를 먼저 밝혔고, 만약 상황이 되면 그 팀원을 먼저 보내줘야 하니 지금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왜 그 팀원이 먼저냐고, 단순히 먼저 말해서 그런거냐고 묻자 나는 업무 역량이 검증된 사람이고, 그 역량에 걸맞은 대체 팀원 또한 없어 보이니 내가 후순위라는 것. 하.... 이건 뭐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고구마 100개 먹은 느낌이었다.
왜 내가 그 부서를 가야만 전문성을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도저히 내 의견이 수용될 것 같지 않아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전화를 끊으면서도 마음이 답답했다. 아직 연초이니 실망하기는 이른 걸까? 그래도 나의 생각을 팀장님이 알게 되었고, 나중에 '안정화가 되면' 고려해 보겠다고 했으니 그 말을 위안 삼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올해도 그냥 이렇게 흘러가게 되는 걸까? 목이 콱 막히는 듯한 기분에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와중에 썸도 깨졌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결혼'에 대한 서로의 생각, 특히 타이밍이 달랐다. 1~2년을 마냥 연애만 하자니 나는 자신이 없었다. 오랜만에 정말 결이 잘 맞는 분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인연이 안 되려면 이렇게도 안 되는구나, 싶었다. 씁쓸하지만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입장이고 그 또한 납득이 되었다. 그저 스쳐 지나간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타격 없이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그 또한 씁쓸한 사실이었다.
35살의 첫 번째 달... 쉽지 않았다. 될 듯 말 듯하더니 결국 안된 것들이 사방에서 툭툭툭툭 하고 터진 듯한 느낌이랄까. 이럴 때는 그저 집에 틀어박혀서 맛있는 음식이나 왕창 먹고, 즐거운 영화들을 마구 보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계속 되뇌면서 말이다. 그래... 뭐 이런 시기도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