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빠르다는 말은 입이 아플 지경
내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정확히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나이와 관련해 자조 섞인 유머를 던지는 한 컷 이상의 짤들이 종종 뜨곤 한다. 30대라는 카피가 걸려 있으면 바로 스크롤을 내리지 않고 눈여겨보게 되는 이 현실.. 씁쓸하지만 웃음이 나오는 유쾌한 짤들에는 흔쾌히 하트를 누르곤 하는데, 이 행위가 몇 번 반복되면 한동안 나의 알고리즘은 '나이'로 뒤덮여 관련된 이미지와 카드뉴스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나이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 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는 상상 속 30대와 현실의 30대를 비교하는 내용이 담긴 한 컷 만화다. 인스타그램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봤겠지만 (글을 읽고 있는 분이 30대라면) 상상 속 30대는 '커리어우먼 같은', '내 집을 마련한', '여유 있게 여가를 즐기는', '세련된 옷차림의', '결혼을 한' 기혼자들로 등장하며 어린 시절에 막연하게나마 상상했던 '진짜' 어른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반면 현실의 30대는 '두쫀쿠를 좋아하는', 그래서 현실에서 하는 고민이란 '두쫀쿠가 품절이 안 된 매장은 어디인지' 정도이며 주말에는 후드티에 운동복을 입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모습이다. 그리고 나는 지극히 후자다. 나도 내 30대가 이럴 줄 몰랐어...
나도 30대 중반에는 결혼을 했고, 집은 마련되어 있으며, 일에서 어느 정도 전문가가 되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상상했다. 35살을 맞이하며 든 생각은 인생이란 결코 나의 상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혼이란 누군가에게는 쉽고 자연스럽게 'Clear'한 일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미션 임파서블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고, 보이지 않는 장기간의 수고로움과 정신적, 육체적 노동이 합쳐졌을 때에야 (사실 그렇다고 해도 현실화될지 장담할 수 없는) 비로소 집 한 채 마련할까 말까임을 알게 되었으며, 약 8년 넘게 직장을 다닌것도 지긋지긋한데 주 6일제에 야근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장기간 근속하신 우리네 부모님을 다시금 존경하게 된 시기가 30대의 복판에 선, 지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이가 주는 무게는 덤이다. 아직 내 정신은(?) 20대 초반의 그때에서 전혀 성숙한 것 같지 않은데 (그냥 삶에 찌들었을 뿐) 주변에서는 이미 나를 '어른 대접' 한다. 어디서 어떤 글을 읽었는데, 34살이 넘으면 더 이상 제삼자로부터 지적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잔소리하기에는 '이미' 어른이고, 한다 하더라도 바뀔 가능성이 없는 나이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사회 초년생 때 30대 초중반 선배들이 정말 어른으로 보였으니까. 그 나이대의 '읭'스러운 사람들을 볼 때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되었다. 여전히 미숙하고, 여전히 처음 해 보는, 그래서 모르는 것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나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내가 20대 때 그토록 선배들에게 기댔던 것처럼 이 또한 업보려니 하지만 사실 종종 버거울 때도 있다.
즉, 30대 중반의 나이와 함께 상상했던 그것들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물갈퀴를 열심히 휘저어야만 겨우 고고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흐르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게 되고, 개중에 일부는 내려놓을 줄 알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33에서 34로 넘어가던 연말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30대 중반이 된다는 생각에 (더 이상 30대 초중반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슬픔) 정말 우울했는데, 오히려 34에서 35가 되는 시점에는 별생각 없었다. 살짝 평화롭기까지 했다. '내 상상 속 30대'를 이루는 일이란 어차피 늦었으니 더 이상 아등바등해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적령기'를 놓친 30대 중반이 한국 사회의 한편을 살아내면서 나이의 무게를 다시금 깨닫기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