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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Jun 07. 2020

다크 투어리즘의 성지 송악산에도 가보자

제주에 가고 싶다 : 송악산과 섯알오름

 대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친구 두 명과 (나름) 전국일주를 하면서 처음 제주를 여행한 이후 웬만한 관광지는 안 가본 곳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제주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다녔다. 출장으로도 많으면 1년에 대여섯 번, 못가도 한두 번은 꼭 제주를 찾았다. 비록 출장 때는 제주지점 사무실에서 종일토록 회의를 하느라 바깥 날씨가 햇살이 좋은지, 눈비가 오는지도 모를 정도였지만 제주로 향하는 마음은 언제나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들떠 있었다. 제주는 그렇게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제주를 알면 알수록, 그곳에 가면 갈수록 제주의 상처와 슬픔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아름답고 빼어난 경치에 감탄을 멈출 수 없었던 그곳들에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서려 있었다. 송악산(松岳山)과 섯알오름 그런 곳들 중 하나였다.  

<송악산과 그 일대는 제주의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장소이다.>

 송악산과 섯알오름이 자리 잡은 대정은 제주에서도 거친 풍토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바람도 거칠고, 땅도 거칠고, 바다도 거칠다. 어찌나 모진 바람이 부는지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도 '바람의 고향'이라 불리기도 한다. 모래바람 때문에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는 '모슬포'도 송악산 바로 왼쪽에 자리 잡고 있다. 척박한 땅은 또 어떤가? 크고 거친 돌들이 많아 농사짓기에도 여간 힘들지 않다. 대정 주민들은 이런 땅을 골라 마늘을 키웠다. 올레 시장의 명물 '마농 치킨'으로 유명한 제주 마늘 중 상당량을 이곳 대정에서 재배한다. 대정의 앞바다 역시 물살이 빠르고 거칠어 제주 어디에서나 쉽게 잡을 수 있는 자리돔도 이곳은 좀 특별하다. 뼈가 억세어 물회로 먹으면 그 가시 때문에 곤란함을 당하기 쉽다. 그래서 주로 구이로 먹는다고 한다.  


 이런 거친 땅에 전쟁의 생채기는 더 깊게 패어있다. 패망 직전 일본은 제주를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삼아 7만 명이 넘는 병력을 투입하였다. 제주 곳곳에 군사시설을 설치했고 그 흔적이 아름다운 제주의 상처로 남아 있다. 일제가 판 진지동굴이 대략 700여 개라고 하는데 송악산 능선과 해안에서 발견된 진지동굴만 60개가 넘는다. 송악산 해안 진지동굴은 해상으로 들어올 연합군의 함대를 막기 위해 송악산 절벽을 뚫고 그 안에 소형 선박을 숨겨놨다가, 폭탄을 싣고 자살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진지 구축을 위한 노역에 제주 주민들을 강제 동원하였고,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현재는 송악산 일대에 15개의 진지동굴이 남아 있다. 한때 관광명소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던 이 동굴들에 이토록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진지동굴 근처로 가기 어렵다.>

 송악산 북쪽 자락에 있는 섯알오름에는 일본군의 대공포 진지와 제주에서 가장 큰 진지동굴이 있다. 형제섬, 산방산, 한라산까지 시원하게 보이는 그림 같은 경치를 가진 이 오름에 전투 사령실, 탄약고, 연료고, 비행기 수리 공장 등 중요 군사 시설을 감추기 위한 진지동굴이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군이 섯알오름에 대형 지하기지를 구축한 이유는 알뜨르 비행장 때문이다. ‘아래 있는 넓은 뜰’이라는 정겨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알뜨르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군용 비행장으로 만든 것이다.(그 험한 일은 또 누가 했겠는가!) 전쟁의 막바지에 일본이 감행한 가미카제 훈련이 이곳에서 이뤄졌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넓은 들판 곳곳에 20개의 격납고가 있으며 현재는 19개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섯알오름은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의 흔적도 남아 있다.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가 그 날의 참혹함을 말해 주고 있는데, 불순분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양민 210명을 정당한 절차 없이 희생시킨 사건이다.  

<산책하듯 오르는 송악산은 뭍사람에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원함을 선사해 준다.>

 송악산은 애기 봉우리가 99개여서 일명 '99봉'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파도가 절벽에 부딪쳐 물결이 운다고 하여 '절울이 오름'이라고도 불린다. 제주의 서남쪽 모퉁이,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곶(코지)이 바로 송악산이다. 송악산은 얼핏 보면 산이라가 보다는 언덕 같은 모습이다. 오르는 길도 평탄하게 정돈되어 있다. 정상까지 약 20여분이면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는데, 들이는 노력에 비해 정상의 풍광은 제주에서도 으뜸갈 정도로 절경이다. 형제섬, 산방산, 가파도 그리고 마라도까지 시원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간에 의해 그토록 큰 아픔을 감내해야 했던 송악산이 다시 인간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바람을 억센 제주의 바람에 실어 보낸다. '다시는 그런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말라고.'  


 아름다운 풍광만으로도 꼭 다시 가고픈 송악산과 섯알오름은 비극의 역사현장을 돌아보는 다크 투어리즘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행복한 역사라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렇지도 않으니 피하지 말고 그 역사와 당당하게 맞서 보는 것도 좋겠다. 그것이 나 같이 끼인 세대의 운명이리라.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제주에 갈 때면 역사책 한 권씩을 들고 가게 된다. 학교를 졸업하면 더 이상 공부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진짜 좋아하게 되면 더 많이 알고 싶어 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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