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홍 Sep 12. 2020

'가지 많은 나무' 가족도서출판 프로젝트

 어머니와의 추억을 책으로 만들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 가족 형태를 고려하면 좀처럼 사용할 일이 없는 말이지만, 우리 남매들이 막 세상에 나오려고 줄을 서던 시절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전(全) 국가적 차원의 슬로건에 버금갈 만큼 빈번하게 쓰던 말 중 하나였다. 구성진 노랫말의 일부요,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문장의 뉘앙스에서 느껴지듯이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니다. 나무에 가지가 많으면 바람에 잘 흔들려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듯이, 자식을 많이 둔 부모에게는 걱정이 그칠 날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 집은 가지가 아주 많은 나무에 속했다. 딸 다섯에 아들 하나. 딸 부잣집에 막내아들로 태어난 귀남(貴男)이가 바로 나였다. (과연 필자가 귀남이로 자랐을까 하는 문제는 기회가 닿으면 말해보려고 한다.) 요즘은 그럴 일이 별로 없지만, 예전 내가 어렸을 때에는 가족 관계를 공개해야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먼 친척이나 동네 어르신이 툭하면 물어보시기도 하고, 가끔은 학교에서 (공개) 조사하기도 하는 등 제법 그런 기회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에 텔레비전이나 냉장고가 있는지 손들어 보라고 하는 것 보다야 낫다.) 딸 다섯에 아들 하나라는 말을 듣던 상대방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우선 크게 놀라 동공이 확대되고 쯧쯧 혀를 차며 동시에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측은지심이라도 발휘되면 꼬깃꼬깃 숨겨 두었던 오백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바지나 치마 춤에서 꺼내 주던 비단결 같은 마음씨를 가진 분도 계셨다.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이 한창인 시기였지만, 말단 경찰이셨던 아버지의 박봉만으로 감당하기에 우리 집에는 입이 너무 많았다.


 이 시기 어렸던 나와 막내 누나 정도를 제외하고는 아버지와 어머니, 장성한 누나들은 '고난의 행군'에 비교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게다가 가지가 많으니 바람에 나무가 성할 때가 없었다. 나무는 나무대로, 가지는 가지대로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살았다. 그 이야기 중 일부를 담아 <나와 내 가족의 역사>라는 글로 이곳에도 소개한 바 있지만, 맨 끝 번호를 뽑고 태어난 내가 아는 바는 극히 일부였으리라. 그렇다고 모두가 항상 불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삶의 무게는 무거웠으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왔다. 


 2020년 현재 우리 가족은 그 가지 끝에 핀 꽃이 열매를 맺고, 그 씨가 다시 땅에 떨어져 또 다른 나무가 되었다. 나무 한 그루가 어느새 제법 큰 숲을 이루었다. 그렇게 나무를 흔들어 대던 가지가 이제는 나무를 포근하게 안아 주기도 한다. 지난 시간을 꺼내 보고 들춰 보면 부대끼며 살아온 시간만큼 시가 되고 소설이 되고 드라마가 된다. 가지 하나하나마다 모두 다른 서사가 새겨져 있고 웃음도 눈물도 스며 있다. 그래서 어머니의 여든한 번째 생신에 즈음해 그 이야기들을 엮어 책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소재도 주제도 '어머니(할머니)'다. 이 숲의 시작이며 뿌리이고 정원사이자 나비이기도 한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가족 구성원의 추억을 글로 써보기로 했다. 각자 사는 게 바쁘고 힘들지만, 어머니(할머니)를 어떻게 추억하는지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렇게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탄생했다. 이미 자신도 누군가의 할머니가 된 첫째 딸부터, 할머니의 부침개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초등학생 손주까지 각자가 기억하고 사랑하는 방식으로 어머니에 대한, 할머니에 대한 열일곱 편의 글이 모였다. 며느리는 그림 솜씨를 발휘해 책 표지와 일러스트레이션을 맡았고, 아직 한글을 깨치지 못한 증손녀들은 그림으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탄생한 원고는 몇 번의 퇴고와 교정, 교열을 거쳐 책의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최종 목표는 종이책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아직 글쓰기에 참여한 가족 모두의 동의는 얻지 못했지만, 그 글들을 이곳에 소개하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다. 물론 브런치에서 이런 공동집필을 어떻게 생각할지 확인도 필요하다. 처음부터 브런치에 소개할 목적보다는 자비 출판으로 가족, 친지나 어머니를 아는 지인분들과 나누려는 취지로 시작한 프로젝트인 만큼 이곳에 공개할 필요도 물론 없다. 그저 책을 출판, 또는 완성한다는 것이 꼭 남의 이야기,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이런 책의 수준이 오히려 출판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를 향한 마음은 순수하고 열정적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여섯 남매의 어머니로, 열한 명의 외손주와 두 명 손주의 할머니로, 다시 다섯 명 증손주의 왕 할머니로 평생을 살고 계신 우리 어머니. 이 책은 사랑을 주는 것 밖에는 모르는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사는 게 바빠서, 표현에 서툴러서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사랑을 어미니(할머니)께 처음으로 고백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숲에서 사랑을 배웠고, 또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대분분을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작가의 이전글 넌 나에게 패배감을 줬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